파란만장한 일생을 산 예인 공옥진

파란만장한 일생을 산 예인 공옥진

입력 2012-07-09 00:00
수정 2012-07-09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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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별세한 공옥진 여사는 파란만장한 일생의 희로애락을 자신만의 해학적인 춤과 한 맺힌 소리로 펼쳐낸 예인이다.

1933년(호적상. 본인 기억은 1931년) 전남 영광에서 판소리 명창 공대일의 4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창을 배웠다.

일본에서 무용가 최승희 집에서 일하며 춤을 배우기도 했고 한국전쟁 당시에는 경찰관의 아내로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으며 속세의 인연을 끊고 절에 들어갔다가 환속하는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1940-1960년대에는 임방울 창극단, 김연수 우리악극단, 박녹주 국극협회 등 여러 국악단체에 참여하기도 했다.

10여 년간 영광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1978년 서울 공간사랑 개관 기념공연에서 전통 무용에 해학적인 동물 춤을 접목한 ‘1인 창무극’을 선보이며 주목받기 시작해 수십 년간 서민, 젊은이들과 함께했다.

또 동양인 최초로 미국 링컨센터에서 단독공연을 하기도 했고 일본, 영국 등지에서의 공연을 통해 가장 서민적인 한국예술을 선보인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1998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2004년 공연을 마치고 나오다 두 번째로 쓰러지고 교통사고까지 당해 무대에 서지 못했고 2007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지정돼 매달 43만원의 생활비를 받아 근근이 생활해 왔다.

투병 전 사비를 들여 키우던 제자들도 하나둘 떠나면서 그의 예능은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인 창무극’이 무형문화재로 인정받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99년 전남도 문화재위원회는 ‘1인 창무극’을 심의했지만 ‘전통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본인이 창작한 작품’이라는 이유로 지정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나 재신청을 했을 때는 무형문화재가 아닌 건축물이 주로 대상이 되는 ‘등록문화재’ 지정을 추진하기도 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10년 5월 마침내 ‘판소리 1인 창무극 심청가’로 전라남도 무형무화재로 지정 예고되고 그해 11월 최종 인정됐다.

지정 예고 한달 뒤인 그해 6월, 5년 만에 ‘한국의 명인명무전’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오른 공 여사는 “맺히고 맺힌 한을 풀었다. 이젠 죽어도 원이 없다”며 혼신의 힘을 다한 생애 마지막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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