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균 은신’ 조계사…종교시설의 ‘소도’ 논쟁 불붙여

‘한상균 은신’ 조계사…종교시설의 ‘소도’ 논쟁 불붙여

입력 2015-12-10 13:53
수정 2015-12-10 13:53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14

사회적 약자 품는 ‘성지’ 역할…”수배자가 종교 이용” 비판도

조계사가 지난달 16일 경찰을 피해 들어온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24일간 보호한 이유는 ‘소도’(蘇塗)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도란 삼한 시대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를 이르는 말인데 죄인이 이곳으로 도망오면 잡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우리나라에서는 비록 범법자라고 하더라도 종교시설로 피신하면 내쫓지 않고, 공권력 역시 해당 종교단체의 허락 없이 들어와 체포하지 않는 것이 어느 정도 용인된 ‘불문율’로 작용해왔다.

종교시설의 소도 역할이 가장 두드러진 시기는 학생운동이 한창이던 1970∼1980년대였다.

당시 주된 피신처는 서울 중구의 명동성당이었다.

당시 명동성당은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비롯해 시국사범들이 경찰에 쫓길 때 찾는 ‘최후의 보루’ 같은 곳이었고, 1990년대 들어서는 크고 작은 노동조합의 농성장소로 쓰였다.

1990년 1월 전국노점상협회 50여명이 명동성당에서 규탄대회를 열었고, 같은 해 3월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경기지부 소속 해직교사 40여명, 4월에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 간부 150여명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등 매달 농성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잦은 농성과 장기 피신으로 신자들이 불편을 겪게 되자 명동성당은 점차 농성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고, 2001년에는 20여일 간 천막농성을 벌이던 민주노총 단병호 전 위원장에게 퇴거요청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민주화 투쟁이라는 명분이 사라진만큼 더이상 명동성당이 이해관계에 얽힌 이들의 투쟁과 농성장으로 쓰일 수는 없다는 의미가 담긴 조치였다.

명동성당이 더는 노조의 농성이나 수배자의 피신을 용인하지 않으면서 대안으로 떠오른 곳이 조계사다.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협상 촉구 촛불집회와 관련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수배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부와 이석행 전 민주노총 위원장 등 6명이 조계사에 몸을 숨겼다.

2013년 12월에는 철도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수배된 박태만 당시 철도노조 수석 부위원장이 조계사로 은신했다.

그리고 지난 11월 16일 한 위원장이 경찰 체포를 피해 조계사로 들어갔다.

조계종 화쟁위원회 위원장인 도법스님은 지난달 19일 “한 위원장이 조계사에 들어온 것과 관련해 엄격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는 의견, 종교단체로서 자비행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 모두 가벼이 여길 수 없는 것들”이라면서도 신변보호에 대해서는 “이미 하고 있는 상태”라고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교분리가 정착된 현대사회에서 종교단체가 소도 역할을 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종교시설로 피신해온 이들은 권위주의 정부 시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집회나 시위도 법에 의해 상당부분 보장된 상태기 때문에 그 의미가 많이 다르다는 것이다. 도리어 경찰의 정당한 공권력 행사를 종교단체가 방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이 나오는 상황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0명을 대상으로 조계사에 도피 중인 한 위원장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의 찬반을 물은 결과 52.9%가 ‘찬성한다’고 밝혔다.

‘반대한다’는 32.9%, ‘잘 모름’은 14.2%로 집계됐다. 이 설문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4.4%포인트다.

신도들 내에서도 종교시설의 소도 역할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적지 않다.

실제로 한 위원장이 자진 퇴거하게 된 데는 조계사 신도회의 요구가 거셌던 것도 한몫했다.

조계사 일부 신도들은 지난 8일 한 위원장의 은신처를 찾아가 몸싸움을 벌이며 한 위원장을 사찰 밖으로 끌어내려다가 그가 격렬하게 저항하는 바람에 실패했다.

한 신도는 “일부 수배자는 약자를 내치지 못하는 종교의 특성을 이용해 들어오는 것 같다”며 “앞으로 또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