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0부작 ‘닭강정’의 이병헌 감독 ‘호불호 실험’
이병헌 감독
류승룡·안재홍·정승길·유승목 등 낯익은 주·조연 배우들이 펼치는 넷플릭스의 30분물 10부작 시리즈 ‘닭강정’은 코미디, 사극, 시트콤, SF물로 변주한다. 급기야 ‘자연인’,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실화 예능과 겹칠 때쯤 혼돈으로 가득 찬 머릿속에는 체념이 차오른다. ‘뭐가 됐든 웃기면 되지.’
●“쫄지 말자고 다짐… 매일 댓글 살펴”
최근 넷플릭스가 전편을 공개한 ‘닭강정’은 의문의 기계 속에서 닭강정으로 변신한 최민아(김유정 분)를 인간으로 되돌리려는 아빠 최선만(류승룡 분)과 직원 고백중(안재홍 분)의 분투를 그린 이병헌(44) 감독표 ‘병맛 개그’다. 네이버 동명 웹툰 원작의 기상천외한 전개는 이 감독을 만나 신박하기 그지없는 드라마로 창조됐다. TV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다가도 어느 순간 ‘이걸 왜 보고 있지’라는 묘한 현타감을 체험한다.
1600만명이 넘게 본 흥행 영화 ‘극한직업’과 드라마 ‘멜로가 체질’로 코미디 장르에 진심을 드러낸 이 감독의 개그를 향한 몸부림은 이 작품에서도 닭강정 소스처럼 끈적끈적·질척질척 묻어난다. 그는 어쩌자고 ‘닭강정’으로 시청자들을 ‘호불호’ 시험대에 세운 것일까.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감독은 “한 가지 음식이 메인인 식당보다는 뷔페처럼 여러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마음으로 ‘닭강정’을 만들었다”고 했다. 연극 톤의 대사와 콩트 같은 상황, 만화 같은 설정이 이 감독 특유의 ‘말맛’과 버무려져 ‘닭강정’은 괴상한 맛을 낸다.
그는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생각이 드는, 난생처음 접하는 분위기의 이야기여서 제작 자체가 도전이었다”며 “촬영 현장에서 이렇게 만들어도 되나 하는 불안감에 ‘쫄지 말자’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고 웃음을 지었다. 이 감독은 그 어느 작품보다 시청자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매일 댓글과 평을 꼼꼼히 살피고, 해외 반응을 기다린다. 그가 최고로 꼽은 댓글은 ‘이참에 이병헌을 병원에 가둬 놓고 이런 것만 찍게 하자’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닭강정’의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이 감독은 “코믹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배우들이 (웹툰과의) 싱크로율까지 높아 극의 빈틈을 채웠다”며 “개인 취향과 호불호를 많이 타는 작품이라고 생각해 병맛 코미디에 재미를 느끼는 시청자들을 겨냥했다”고 말했다. 그는 “극한직업 후 원작 웹툰을 처음 보고 2시간 분량의 영화로 쫀쫀하게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면서도 “넷플릭스와의 협의 과정에서 출퇴근길 쉽게 볼 수 있는 쇼트폼 같은 10부작 포맷이 결정됐다”고 했다.
‘닭강정’ 곳곳에 그의 전작들이 개그 코드로 활용된다. 류승룡이 몸의 관절을 뚝뚝 꺾는 부분은 영화 ‘극한직업’의 한 장면이었다. 유인원(유승목 분) 박사의 눈물 나는 생존기에서는 ‘멜로가 체질’ 화면과 장범준이 부른 OST가 시치미를 뚝 떼고 흘러나온다. ‘자기애가 넘치는 것 아닌가’라는 질문에 그는 “작품에 대한 애정을 코미디 장치로 썼는데 이젠 그러지 않으려 한다”고 다짐했다.
결말은 예측불허다. 그는 외모에 대한 편견을 꼬집는 이야기에서 출발해 ‘인간은 배려를 바탕으로 진화한다’는 인류애적 메시지로 주제를 확장했다고 한다.
이 감독은 “‘닭강정’에 대한 극명한 호불호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코미디 장르에서 해외 반응 등과 같은 시청자 데이터가 쌓일수록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며 코미디를 향한 집념을 보였다.
2024-03-20 2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