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호의 짧은 소설
민수씨의 어린 아들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한 것은 일요일 점심 무렵의 일이었다. 함께 식탁에 앉아 라면을 먹다가 문득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니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있었다. 어쩐지 얼굴빛도 불그스레해 보였다. 민수씨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아들의 이마에 손을 대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린 시절 집으로 들어와 제일 먼저 손을 넣어보던 안방 아랫목처럼 아들의 이마와 등, 겨드랑이가 펄펄 끓고 있었다.민수씨는 다용도실 안 세탁기에서 빨래를 꺼내고 있던 아내에게 큰 목소리로 물었다. 아내는 젖은 빨래를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나왔다.
“감기인가 본데…? 어제 잘 때도 살짝 뜨끈하더니….”
아내는 찬 손으로 아들의 이마를 짚어보면서 말했다.
민수씨는 조금 부아가 일었다. 아니, 아이가 어젯밤부터 그랬는데, 라면을 끓여주었다는 거야? 하지만 민수씨는 입 밖으로 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자신 또한 조금 전까지 늦잠을 잤기 때문이었다.
“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닐까?”
“조금 쉬면 나아지겠지, 뭐… 일요일인데 여는 병원도 없고….”
민수씨는 스마트폰으로 일요일 진료 병원을 찾았다. 조금 멀긴 했지만 아동병원 한 곳이 휴일에도 진료를 한다고 떴다. 민수씨는 겉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왔다.
“뭐하려고?”
아내가 건조대 앞에 앉아 있다가 물었다.
“병원에 가야지. 요즘 독감이 대유행이라는데.”
민수씨는 아들을 데리고 현관문을 나서다 말고 다시 거실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리 직장 나간다고 해도 아들부터 챙겨야 하는 거 아니야? 뭐 그렇게 대단한 일 한다고!”
민수씨는 아내의 말을 기다리지 않고 쿵, 현관문을 세게 닫았다. 아들은 그런 민수씨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대기실 소파에 빈자리 하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기환자만 78명, 예상 대기시간은 세 시간 남짓이었다. 민수씨는 할 수 없이 아들과 함께 대기실 창턱에 기대앉았다. 대부분 엄마와 함께 온 아이들은 하나같이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민수씨는 또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아내가 ‘경단녀’의 신분을 벗고 다시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이 개월 전의 일이었다. 한 작은 출판사의 편집 디자이너 인턴으로 채용된 것인데, 그때만 해도 민수씨는 그러려니 하고 말았다.
“인턴이 다 뭐야, 인턴이? 당신 편집 디자이너 경력만 7년이잖아?”
민수씨의 말에 아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대한민국에서 그런 걸 누가 인정해 준다고… 써주는 것만 해도 황송한 처지인데.”
슬쩍 물어보니 월급도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했다. 그런 델 뭣하러 나가냐고, 민수씨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그냥 속으로 삼키고 말았다. 아이는 어느덧 초등학교 2학년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방과후수업이다, 영어학원이다, 합기도다, 다녀야 할 학원이 많았다. 거기에다가 대출받은 아파트의 거치 기간도 모두 끝이 났다. 이젠 원금도 같이 상환해야 할 처지였다. 민수씨의 월급은 삼 년째 오르지 않고 제자리이니, 아내 스스로 일자리를 알아본 것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민수씨는 서운한 것이 많았다. 아내는 저녁 여섯 시 퇴근 시간을 매번 지키지 못했는데, 어느 땐 나흘 연속 자정 무렵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오기도 했다. 아내가 저녁 식사를 제때 차려주지 않았다고 서운한 것은 아니었다. 자기야 그렇다고 쳐도 아이는, 아이는 어쩌란 말인가? 민수씨는 그동안 몇 번 아내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하던 일을 다 마치지 못한 채 퇴근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 아들과 함께 짜장면을 시켜 먹곤 했다. 한 번 두 번은 그러려니 넘어갔는데, 횟수가 많아지니 적잖이 스트레스가 되었다. 그래도 월급은 내가 훨씬 더 많이 가져오는데, 이게 뭔가? 민수씨는 아내와 말다툼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난 팔 년 넘게 아이 밥을 차렸다구. 당신은 몇 번이나 했는데?’ 하고 물었다. 민수씨는 가만히 아내를 노려보기만 했다.
“A형 독감이 맞네요. 당분간 학교에 보내지 마시고 푹 쉬게 해주세요.”
의사는 아이의 키트를 확인해보고 나더니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학교도 보내면 안 될 정도예요? 그 정도로 심각한 거예요?”
민수씨가 그렇게 묻자 바로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어디 얘만 문제인가요? 얘가 학교 나가면 다른 친구들한테도 다 옮기게 돼요.”
민수씨는 약국에서 타미플루를 받고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사위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상태였다. 내일 어쩌지? 민수씨는 바로 차를 출발시키지 않고 고민했다. 아내도 내일 출근해야 하고, 자신도 마찬가지 처지였다. 안동에 살고 있는 어머니나, 서산에 사는 장모님이나, 이 저녁에 갑자기 서울로 올라오시라고 부탁드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이라도 바로 회사 부장한테 전화를 걸어야 하나? 눈치가 보이더라도 내가 출근하지 않는 게 맞지 않나? 민수씨는 그렇게 생각을 하다가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뭘 얼마나 번다고….
“아빠….”
한참을 그렇게 운전석에 앉아 있는데 아들이 불렀다.
“저, 내일 학교 안 가는 거예요?”
아들은 조수석 등받이 깊숙이 몸을 묻은 채 물었다.
“응, 그래야 한다네…. 괜찮아, 약만 잘 먹으면 금방 낫는대.”
민수씨는 아이의 이마를 한 번 더 만져본 후 차를 출발시켰다. 병원에서 잰 아이의 체온은 39도였다.
“아빠….”
차가 사거리에 정차했을 때 다시 아이가 말을 꺼냈다.
“근데 왜 닭들은 독감에 걸리면 다 땅속에 묻어 버려요?” 민수씨는 잠깐 아들의 질문에 머뭇거렸다.
“으응, 그건 그냥 놔두면 옆에 있는 닭들한테도 다 옮겨서 그러는 거래.”
“옮겨서요? 그럼 닭들한테도 주사 놔주고 약 주고, 그러면 되잖아요? 근데 왜 다 묻어요?”
민수씨는 어떤 대답을 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솔직히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닭은 많고, AI가 어떻든, 자신과는 별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사실대로 아들에게 말해주었다.
“묻는 게 더 돈이 덜 들어서 그런 걸 거야….”
민수씨의 말에 아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빠….”
잠시 후 아들이 다시 말을 했다.
“우리 반에도 결석하는 애들이 많아요…. 성주도 독감이고, 지민이도 독감이래요….”
민수씨는 아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계속 내일 일을 걱정했다. 오늘은 내가 병원에 갔으니, 내일은 아내가 출근하지 않는 게 맞으리라. 그렇게 말하리라. 민수씨는 그렇게 결심했다.
“아빠… 저, 사실은요….”
아들이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성주네 집에 갔었어요…. 성주가 결석한 날에요….”
민수씨는 뚱하니 아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거길 왜 갔어?”
“성주가 심심할 거 같아서요…. 같이 마인크래프트하려고요….”
아들은 몇 번 기침을 했다.
“그리고 사실은요… 제가 성주한테… 기침 좀 해달라고 했어요… 제 얼굴에 대고….”
민수씨는 갑자기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묵묵히 아들의 이야기만 들었다.
“저도 독감 걸리면 아침부터 성주한테 갈 수 있잖아요….”
사거리를 벗어나자 도로는 막힘 없이 원활했다. 모두 각자의 집에서 내일을 준비 중인 듯싶었다.
민수씨의 아들이 조용히 말을 이었다.
“아빠… 저는 닭들이 너무 불쌍해요….”
민수씨는 가만히 앞차의 후미등만 바라보았다.
소설가 이기호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이효석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2017-01-03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