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누구 없어요? - 임민영

[2017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누구 없어요? - 임민영

입력 2017-01-01 18:32
수정 2017-01-01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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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또 이래.”

아침에 엄마가 일러준 대로 손잡이를 휙휙 움직여 보았다. 달래듯이 살살 움직였다가, 짜증이 치솟아 세게 움직여 봐도 화장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갑자기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이마에는 진땀이 배었다. 손잡이를 당겼다가 밀었다가 있는 힘껏 발버둥을 쳤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는 바람에 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문을 부수고라도 여기에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쾅쾅. 쾅쾅쾅. 퍽.

“누구 없어요? 살려 주세요!”

혹시나 지나가던 사람이 듣고 도와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파트 복도는 고요했다. 익숙했던 화장실이 너무나 좁고 답답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금방 나갈 수 있을 거야. 조금만 기다리자. 우니까 코도 막히고 숨도 안 쉬어지잖아. 울면 안 돼.’

오후 6시 41분.

사은품으로 받아 온 동그란 시계가 수건걸이에서 달랑거렸다. 화장실에 갇힌 지 30분 즈음 지났나 보다.

‘엄마 오려면 두 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데….’

다시 위아래로 손잡이를 움직여 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환풍기도 망가졌는데 설마….’

무서운 생각의 자리가 조금씩 넓어지면서 심장은 더욱 쿵쾅거렸다.

‘침착하자, 침착해. 차라리 잠을 자자. 한숨 자고 나면 아빠가 올 거야.’

바닥에 깔린 발판 위에 수건을 펴고 누웠다. 팔다리가 발판을 넘어가 불편했지만, 자리를 탓할 때가 아니었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가빴던 숨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조용한 중에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들려왔다.

똑 똑. 물 떨어지는 소리.

쏴아. 윗집인지 아랫집인지 변기 물 내려가는 소리.

또각또각. 멀리서 들리는 발소리. 철컥 쾅. 역시나 남의 집으로 들어갔지만.

평소에는 잠도 많은데, 어쩐지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은 더욱 또렷해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침에 엄마 말 귀담아들을 걸….’

“박민서 빨리 나와! 학교 늦겠다!”

엄마의 성난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8시 33분. 이제는 정말 변기에서 일어나야 할 시간이다. 개운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오늘도 지각할 수는 없다. 급히 바지를 올리고 화장실 문을 열려는데 손잡이가 또 말썽이다. 지난주부터인가 손잡이를 잡고 몇 번을 움직여야 문이 열렸다. 그러더니 하필 바쁜 이 아침에 더 안 열리는 거다. 하는 수 없이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엄마, 문 좀 열어 줘!”

“으이그. 위아래로 몇 번 올렸다 내렸다 하면 열리던데.”

“밖에서 열면 잘 열리는데 왜 이러지?”

“그러니까 문은 왜 닫아 가지고. 꽉 닫지 마.”

“나도 6학년이라고요.”

괜히 짜증이 나서 인사도 안 하고 집을 나섰다. 마침 내려오고 있는 엘리베이터를 잡으려고 잽싸게 버튼을 눌렀다.

월월! 월! 월월!

“으악, 깜짝이야!”

“순대야, 가만 있어.”

또 윗집 순대 녀석이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짖어 대는 통에 심장 떨어질 뻔했다. 순대는 날 보기만 하면 짖는다. 이제는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다.

“학교 가는구나. 아침은 먹었니?”

“아니요. 늦게 일어나서….”

“아침을 먹어야 공부를 잘하지. 몸이 이렇게 비리비리해서. 쯧.”

순대 할머니는 만날 때마다 꼭 잔소리를 하신다. 남 일에 어찌나 관심이 많으신지, 공부는 잘하느냐, 형제 없이 혼자여서 쓸쓸하겠다는 둥, 오늘따라 더 듣기 싫었다.

‘무슨 상관이람?’

나는 대충 고개를 까닥이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뛰쳐나갔다.

오후 6시. 드디어 학원 수업도 끝나고 집에 가는 길.

아침에 개운하게 해결하지 못해서인지 계속 배 속에서 구르릉구르릉 소리가 났다.

‘집에 아빠가 있을까? 없으면 자유 시간인데.’

아파트 앞에 도착해 늘 하던 대로 엄마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먹을 거 뭐 있어요?]

학원 끝나고 집으로 잘 가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아빠의 새 직장을 찾아 서울로 이사를 한 뒤 엄마는 마트에서 일을 시작했다. 9시가 넘어야 오기 때문에 저녁은 혼자 먹거나 아직 일자리를 찾고 있는 아빠와 둘이 먹는 날이 많다.

집과 가까워질수록 배에서 점점 더 큰 신호를 보내왔다. 현관문을 급히 닫고 들어가는데 아빠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누구 없어요? 예쓰!”

나도 모르게 두 팔을 당기며 예쓰를 외쳤다. 아빠가 약속 있는 날인가 보다. 컴퓨터도 하고 자유 시간을 즐길 기회가 아주 오랜만에 찾아왔다.

“아오 배야, 화장실부터!”

나는 재빨리 화장실에 뛰어 들어가 바지를 내리고 변기에 앉았다.

“끄응 휴. 큰 일 날 뻔했네.”

아뿔사.

아침에 그랬던 것처럼 화장실 문이 열리지 않는 거다.

‘문 열고 똥 눌걸…. 나도 모르게 닫아 버렸네. 이 바보!’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손잡이 몇 번 돌리면 문이 열릴 줄 알았다.

오후 7시 15분. 한 시간도 넘었다.

지잉- 지잉-.

현관문 앞에 벗어 놓은 가방에서 휴대폰 진동 소리가 들렸다.

‘엄마? 아니면 아빠? 화장실에 갇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모르겠지. 숙제도 안 하고 컴퓨터 하는 줄 알고 잔소리하려고 전화했을 거야.’

띠리리링. 띠리리링.

잠시 후 집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긴 울림 후, 전화가 끊어지고 또다시 전화가 왔다. 받을 수 없는 전화벨 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웠다. 하지만 작은 희망이 보였다. 내가 집 전화도 받지 않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테니까.

‘그래, 조금만 더 버텨 보자.’

아무래도 아빠는 밤늦게 들어올 참인가 보다. 얼른 엄마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엄마, 나 화장실에 갇혔어. 얼른 와서 문 좀 열어줘. 하느님이 정말 있다면 저 좀 살려 주세요.’

오후 7시 40분.

딩동.

“택배 왔습니다.”

택배 아저씨가 초인종을 눌렀다. 나는 벌떡 일어나 화장실 틈새에 대고 있는 힘껏 소리를 질렀다.

“도와주세요! 화장실에 갇혔어요!”

쾅쾅. 쾅쾅쾅.

“택배입니다.”

“아저씨! 살려 주세요!”

“앞에 놓고 갑니다.”

나갈 수 있다는 희망도 잠시, 아저씨는 상자를 내려놓고 그냥 가 버렸다. 아저씨가 내 목소리를 듣고 119에 신고를 해 주기를 바랐건만. 아저씨가 그렇게 가버리는 게 당연하다. 엄마는 혼자 있을 때 누가 오면 택배 아저씨더라도 소리 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엄마와 둘이 있을 때도 엄마는 문을 열지 않았다. “놓고 가세요.”라고 큰 소리로 대답했을 뿐이다.

진정시켰던 가슴이 다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마구 뛰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더니 금세 눈물이 차올랐다.

“으흡 흐 흑.”

‘이게 꿈은 아닐까? 꿈이라면 좋겠다. 근데 왜 이렇게 생생한 거야.’

‘그동안 아빠가 늦게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벌받은 걸까?’

‘오늘 아침에도 짜증내서 엄마 기분 상하게 했는데…. 미안해, 엄마.’

탁 탁 탁 탁.

‘응?’

멀리서 천천히 내딛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커졌다. 그리고 우리 집 앞에 멈춰 섰다.

딩동 딩동.

“뭔 일 있어요?”

순대 할머니였다. 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살려 주세요! 화장실에 갇혔어요!”

쾅쾅 쾅 쾅쾅.

순대 할머니는 내 목소리를 들은 건지 못 들은 건지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화장실에 갇혔어요! 살려 주세요!”

문을 두드리던 할머니의 손이 멈추고 발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할머니가 그냥 가면 안 되는데 큰일이다. 나는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더 크게 소리 질렀다.

“할머니! 할머니! 으헝 흐엉. 으흑.”

할머니가 자리를 떠나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정말 더 이상은 못 참겠다.

“저기요! 무슨 일 있어요?”

잠시 후 문밖에서 웬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화장실에 갇혔어요. 살려 주세요!”

할머니가 경비 아저씨를 데리고 온 것 같았다.

“무슨 소리 들리죠? 살려 달라고?”

“그런 것 같네요. 119를 불러야겠는데…. 할머니 여기 계세요. 내가 전화하고 오지요.”

순대 할머니가 나를 살렸다.

“무슨 일이에요?”

사람들이 모여들었는지 문 앞에서 날카로운 여자 목소리도 들린다.

삑삑삑삑. 철컥.

“민서야!”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얼른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엄마가 밖에서 손잡이를 내리자마자 너무나도 쉽게 문이 열렸다.

“웬일이니, 괜찮아? 어디서 사고 난 줄 알았잖아.”

“화장실 문이 안 열렸어. 흐어엉. 학원에서 오자마자 갇혀 있어헝.”

“전화도 안 받고, 학원에서는 갔다고 하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일도 다 안 끝났는데 뛰어왔어. 괜찮아. 괜찮아.”

엄마는 나를 꼭 안아 주었다. 현관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순대 할머니가 보였다.

“아이고 저런, 어린 것이 놀랐겠구먼.”

“아유 고맙습니다. 어떻게 알고 와 주셨어요?”

“아니 순대가 화장실에 대고 자꾸 짖길래. 들어가 있어 보니까 뭐라고 소리 지르는 게 들리더라고.”

할머니 얼굴이 진짜 우리 할머니가 걱정하는 얼굴 같았다.

할머니와 경비 아저씨가 돌아가고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거실에 대자로 누워 저녁을 준비하는 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엄마, 어디 갈 때 꼭 휴대폰 챙겨. 나처럼 무슨 일 생기면 전화하게.”

“그래, 너도 엄마한테 연락 잘하고.”

“아빠는?”

“아빠 상갓집 가셨대.”

“아까 집에 왔을 때 아빠 없다고 좋아했는데, 화장실에 갇혀서는 아빠 발소리만 기다렸어.”

“아빠도 엄마 전화받고 놀라서 오고 계셔.”

“근데 엄마, 윗집 할머니는 나처럼 갇히면 누가 열어 줘? 순대가 열어 줄 수도 없고.”

“그러게, 할머니 혼자 사시는 것 같던데.”

“가끔 올라가 볼까?”

월월! 월! 월월!

다음 날, 순대는 어김없이 나를 반겨 주었다.

“몸은 괜찮아? 화장실 문은 고쳤고?”

“네, 고맙습니다. 문은 오늘 아빠가 고치기로 했어요.”

오늘따라 할머니 목소리가 다정하게 느껴졌다.

“전부터 궁금했는데요, 강아지 털이 순대 색깔 같아서 순대라고 지으신 거예요?”

“그리 보니 또 그렇네? 우리 딸 이름이 순영이, 아들이 대호야. 첫 글자 따서 순대.”

할머니의 이름 짓는 센스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2017-01-02 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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