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가 말한다, 앞만 보며 살지 말라고

죽은 자가 말한다, 앞만 보며 살지 말라고

입력 2011-12-24 00:00
수정 2011-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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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동안】 윤성희 지음 문학과지성사 펴냄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죽은 자가 말을 한다. 그것도 죽은 사람이 주인공이 되어 많은 것을 말한다.

‘웃는 동안’(문학과지성사 펴냄)은 윤성희(38)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이다. 주인공들에게 웃는 동안만이라도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갔다 온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했다. 소설 속 인물들은 주로 노인이거나 죽은 사람이다. 그들은 딴짓을 하고 유머를 가장한다. 타인에게 자신이 가한 위해의 기억 때문에 그 모두를 이해하게 될 뿐이다.

올해 나온 첫 장편 ‘구경꾼들’에서 장편 소설 작가로서의 역량을 확인시켜 준 윤 작가이기에 4년 만의 소설집에 대한 반가움이 더하다.

조카는 ‘나’의 소식을 친구들에게 알렸다. 세 친구는 라면을 먹다가 혹은 화장실에 있다가 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꼬박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보낸 친구들은 발인을 마치고 집으로 향한다. 그 길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된 그들의 인연을 더듬어 본다.

영화를 보러 간 극장에서 세 친구는 소파를 훔쳤다. 마치 소파 수리공인 양 당당히 소파를 들고 나섰던 게다. 서로 소파를 갖겠다고 승강이를 벌였지만 결국 내 차지가 되었다. 이제 내가 없으니 세 친구는 이 소파를 어디에 둘지를 고민한다. 무거운 소파를 이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닌다. 결국 소파의 거처를 정하고 난 뒤 세 친구는 웃다가, ‘웃는 동안’ 먼 여행을 떠난다. 각자 미래의 자기 모습을 만난다.

그들 중 하나는 나를 만나 자신이 일찍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웃는다. 현실로 돌아온 그들은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웃은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공중부양도 할 수 있을 듯 자신감이 생긴다.

‘웃는 동안’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각각의 이야기에 등장한다. 죠스바를 먹다 죽은 귀신, 사라진 것들에 대한 기억, 소매치기를 하는 세 자매, 가짜 자서전을 쓰는 여자…. 씁쓸한 상황이거나 비참한 상황에 놓인 이들은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며 웃는다. 그들을 만나는 동안 소설은 지금 내 모습은 어떤가를 생각해 보도록 이끌어 준다. 죽은 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도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앞만 보며 살아가는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이란 생각이 든다.

책에서는 ‘웃는 동안’을 포함해 열 편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소설마다 우연히 혹은 전부터 쓰겠다고 생각했던 것들, 문장이 된 후에도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이 소설 안에 모여 있다고 했다. 작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동안 자주 웃었고 즐거웠다고 고백했듯 독자들도 소설을 읽는 동안 삶을 돌아보며 웃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2011-12-24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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