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근담 하룻말 2] 널려 있는 ‘나물뿌리’와 얼마 만큼 달라졌을까

[채근담 하룻말 2] 널려 있는 ‘나물뿌리’와 얼마 만큼 달라졌을까

임병선 기자
입력 2019-09-12 10:18
수정 2019-09-14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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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저녁 땡초부추전에 막걸리 잔 부딪히는데 자꾸 누군가 시비를 붙는다. “하루 한 편씩만 읽는 사람이 있겠어요?” “허허, 있으면 어떻고 또 없으면 어쩔까?” 물색 없는 기자가 끼어들었다. “공모를 해보면 어떨까요? 일년 뒤 누군가 나타나 실천했다고 하면 박 선배랑 술 한 잔 기울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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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책이다. 2014년 피카소를 제치고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액(2017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살바토르 문디(구세주)’가 경신할 때까지) 화가였다는 치바이스의 그림을 멀거니 쳐다보기만 해도 좋다. 묘하게도 앞의 ‘그림이 좋은 책이 있다’는 제보를 받았을 무렵 치바이스의 그림들도 서울 예술의전당에 내걸려 있었다. 명나라 때와 청나라 때 판본이 각각 수십 종이고, 국내 번역본만 해도 수십 종이다. 모두 글자로만 펴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나물뿌리 씹듯 생각을 곱씹으라고 지은 책인데 여백과 숨쉴 곳을 만들지 못했다.
세상에 채근담은 널려 있다. 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임동석, 한용운, 김원중, 조지훈 번역본, 중국 궈마이 판본과 이를 옮긴 ‘채근담 하룻말’.
세상에 채근담은 널려 있다. 위 오른쪽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임동석, 한용운, 김원중, 조지훈 번역본, 중국 궈마이 판본과 이를 옮긴 ‘채근담 하룻말’.
심지어 한국어판을 계약한 중국 궈마이 문화매체 유한주식회사 판본 ‘채근담 일일일언’에도 치바이스 그림은 손바닥만 하지도 않았다. 해서 마치 사진을 촬영한 듯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곤충 그림의 맛을 빼앗았다. 그림을 확 키우고 ‘못난 글을 뿌려 어울림을 찾았다.’

조금 더 자세히 번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자. 원문을 생략하고 옮긴 것만 비교한다.

자신의 마음을 우매하게 하지 말라. 사람의 정을 다 쓰지 말라. 물건의 힘을 끝까지 쓰지 말라. 물건의 힘을 끝까지 쓰지 말라. 이 세 가지는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는 것으로 삼을 수 있고, 백성을 위한 명(命)으로 세울 수 있으며, 자손을 위하여 복 짓는 것으로 삼을 수 있다.(임동석 옮김)

저의 마음을 어둡게 하지 말고, 남의 고초를 너무 심하게 하지 말며, 사물의 힘을 다 긁어 쓰지 말라. 이 세 가지로써 천지를 위하여 마음을 세우고, 백성을 위하여 목숨을 세우며, 자손을 위하여 복을 지을 수 있으리라.(조지훈 옮김)

자신의 마음을 어둡게 하지 않고, 남을 야박하게 대하지 않으며, 재물을 낭비하지 않는 것. 이 세 가지는 천하를 위해 [내] 마음을 세우는 길이고, 살아가는 백성을 위해 목숨을 세워주는 것이며, 자손을 위해 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김원중 옮김)

아래는 ‘채근담 하룻말’의 22일치다.
부귀를 뜬구름으로 여기는 풍류가 있으되 그렇다고 꼭 암서혈처(巖捿穴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고황천석(膏?泉石)의 괴벽함이 없더라도 항상 술과 시에 취할 수는 있어야 한다. 다툼과 쫓음은 남의 말을 들어주면 그만, 모든 사람이 취했다고 혐의 둘 일도 없고, 염담은 자신의 뜻대로 하면 그만, 자신 홀로 깨어 있다고 자랑할 것고 없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한 바 “법에 얽매임도 없고, 공(空)에 얽매임도 없다”라는 것이다. 몸과 마음 두 가지가 자유자재한 경지이다.(임동석 옮김)

부귀를 뜬구름으로 여기는 기풍이 있어도 반드시 깊은 산골에 살 필요는 없으며, 산수를 좋아하는 버릇이 고질됨은 없어도 항상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를 즐겨야 하리라. 명리의 다툼일랑 남에게 맡기되 뭇사람이 다 취해도 미워하지 말며, 고요하고 담백함을 내가 즐기되 홀로 깨어 있음을 자랑도 하지 말라. 이는 부처가 이르는 바 법(法)에도 얽매이지 않고 공(空)에도 얽매이지 않음이니 몸과 마음이 자유로울지니라.(조지훈 옮김)

부유함과 귀함을 뜬구름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 하더라도, 꼭 바위나 동굴에 깃들어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샘물이나 돌에 심취하는 기벽이 없다 하더라도, 늘 스스로 술에 취하고 시에 탐닉해야 한다. [명예와 이익을] 다투는 일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명예를 다투는 데] 흠뻑 취해 있음을 싫어하지 마라. 고요하고 담박한 마음은 자신에게 맡기고 홀로 깨어 있음을 자랑하지 마라. 이것이야말로 부처가 말하는 바 제법(諸法)에 얽매이지 말고 공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것이니, 몸과 마음 두 가지가 자유자재인 것이다.(김원중 옮김)

아래는 ‘채근담 하룻말’의 129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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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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