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삭바삭 낙엽, 찌릿찌릿 우리 형… 어린이 시인들의 유쾌한 시선

바삭바삭 낙엽, 찌릿찌릿 우리 형… 어린이 시인들의 유쾌한 시선

윤수경 기자
윤수경 기자
입력 2024-05-31 01:37
수정 2024-05-3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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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맨
최문현 외 지음/강은옥 그림
비룡소/120쪽/1만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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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나 동시를 쓰는 작가는 어른인 까닭에 독자인 어린이를 향해 눈과 귀를 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어린이 마음에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어린이가 아니라는 한계 때문에 독자를 지레짐작하거나 오인할 위험이 항상 존재한다.

‘어린이가 쓴 말놀이 동시집 공모’를 통해 탄생한 동시집 ‘지우개맨’은 어린이 시인들의 작품 50편을 실어 그들만의 세계를 온전히 담았다.

동시집에는 말의 운율, 언어가 만들어 낸 우연의 재미, 독특한 시선 등 어린이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보석 같은 시어를 따라가다 보면 반짝이는 재치와 자유로움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다.

“앵두야! / 앵?/ 네 얼굴이 빨개졌어 / 여름이 왔나 봐 / 앵! / (중략) / 앵두가 자꾸 나를 부르네 / 앵두, 하고 입술을 내밀면서”(‘앵두랑’ 부분)

반복되는 ‘앵’ 소리는 여름 뙤약볕에 붉게 익어 가는 작고 동글동글한 앵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여름의 매미 소리와도 닮아 있다. 마지막엔 누구나 ‘앵두’ 하고 입술을 쭉 내밀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낙엽이란 동시는 또 어떠한가. “바삭바삭 / 맛있는 소리 / 햇볕에 튀겨서 / 더 바삭거리는 걸까?”(‘낙엽’ 전문) 낙엽을 밟는 소리는 맛있는 소리가 되고 햇볕은 바삭한 요리를 준비한 존재가 된다. 발랄하게 발산되는 상상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린이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인펜, 지우개, 군것질거리 등이 소재로 쓰였지만 상상력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

“모자를 벗고 / 정중하게 인사 // 작은 손 마주 잡고 / 쿵짝짝 쿵짝짝 // 왈츠 한 곡 추고 나면 / 내 동생 그림 완성!”(‘사인펜 신사’ 부분) 손을 맞잡은 어린이와 사인펜 신사가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함께 만들어 낸 작품이 자못 궁금해진다.

또한 조부모, 부모, 형제 등 가까운 인간관계 속에서 느끼는 고민도 엿볼 수 있다. “위험한 전기뱀장어는 / 건드리면 전기가 찌릿찌릿! / 아무도 건드리지 않아 외로운 / 전기뱀장어는 / 우리 형” (‘전기뱀장어’ 전문)

사춘기에 접어든 형은 가족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어린이 시인은 그 속에서 외로움을 읽어 낸다. 이런 시선이 어린이들이 빚어낸 세계에 독자를 흠뻑 빠지게 한다.
2024-05-31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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