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으로 잡는 건강] 독립운동과 함께한 활명수·우황청심원

[한방으로 잡는 건강] 독립운동과 함께한 활명수·우황청심원

입력 2015-12-27 17:52
수정 2015-12-28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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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민족 의학으로 우리 민족의 애환과 함께했으며, 일제강점기 일제의 민족혼 말살 정책으로 숱한 억압을 받았다. 그 영향인지 독립운동가 중에는 한의사가 많다.

한의사 강우규 의사가 대표적이다. 진료 활동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학교를 설립해 계몽운동을 하는 등 교육을 통한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그는 1919년 3·1 독립만세 운동 이후 일본 총독을 암살하고자 서울역 광장에서 폭탄을 던져 의열단 설립의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고, 항일 의열 독립 투쟁의 서막을 열었다. 한약을 판 돈은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쓰였다. 그중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방제제도 있다. 활명수와 우황청심원이다. 활명수는 원래 궁중 어의들만 사용하는 궁중 비방이었다. 이를 1897년 대한제국의 선전관이었던 노천 민병호와 그의 장남 민강이 동화약방을 창업하며 한의 신약으로 판매했다. 수익은 독립운동 군자금으로 쓰였다. 활명수에는 현호색, 후박, 육구두, 정향, 진피, 창출, 건강, 계피, 고추팅크, 멘톨, 아선약 등이 들었다. 추출 방법과 보관, 판매 등에서 근대적 제약의 형태를 띤 대한민국 최초의 제약화된 한약이다. 우황청심원도 빠질 수 없다. 조선무약의 창립자이자 3~4대 대한한의사협회 회장이기도 했던 일송 박성수는 1920년 독립운동에 가담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르고서 1925년 조선무약을 설립해 솔표 우황청심원을 개발했다. 조선무약은 설립 초기부터 방방곡곡에 약재를 사고팔고 나르면서 약재 속에 독립운동의 편지를 함께 전달, 독립운동 조직의 연락책 역할을 톡톡히 해 냈다.

■도움말 조희근 대한한의사협회 약무이사

2015-12-2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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