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순넘은 늙은 고목에 꽃을 피워줬어요”

”팔순넘은 늙은 고목에 꽃을 피워줬어요”

입력 2015-08-05 11:53
수정 2015-08-0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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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세에 시인 등단한 만학도 김영희씨, 늦깎이로 시인 등단

“이 가슴 아리는 그리움이 / 귀한 그님이기에 / 이렇게 버티어 내렵니다. // 남은 그리움은 나에겐 영원한 사랑입니다.”

김영희(84·여·제주시 화북동) 시인의 시 ‘그리움’의 한 부분이다.

’그리움은 곧 삶의 버팀목이자 희망을 꿈꾸는 힘’이라는 시인의 생각을 절절하게 표현했다.

김씨는 지난달 이 시를 발표, 서울문학에 당선되며 시인으로 등단했다.

그는 “내 인생에 새로운 행복이 찾아왔다. 심사위원들이 늙은 고목에 꽃을 피워줬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에겐 ‘시인 김영희’라는 수식어가 아직 낯설다.

여전히 배움의 과정에 놓여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배움과 도전에 나이가 따로 없다.

그는 환갑을 조금 넘길 때까지 글을 제대로 읽거나 쓸 줄 몰랐다.

60대 중반 들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글을 배우지 못한 서러움과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어서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딸에게 글을 배우며 학교 진학을 준비했다.

67세이던 지난 1998년 제주 동려야간학교에 입학, 초등학교 교육과정 수업을 시작했다. 2년 만에 검정고시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졸업장을 따냈다.

2001년 만 70세에는 제주제일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에 진학했다. 3년 뒤 손자뻘 되는 남학생들과 같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김씨는 2005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해 교육학을 전공하는 어엿한 대학생이다.

그는 “공부에 대한 열의는 많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며 “이해될 때까지 책을 읽고 또 읽는 것을 반복하다 보면 남보다 진도가 뒤처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대학교 재학 기간이 길어지자 잠시 휴학도 했으나 공부에 대한 열의를 식지 않았다.

김씨는 일제 강점기에 맞은 어린 시절을 일본 순사들의 호루라기 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며 숨죽여 보냈다. 10대와 20대는 제주 4·3사건의 비극과 이후 6·25 한국전쟁을 겪었다.

결혼해 얼마 안 된 30대에 남편과 사별한 후부터는 딸 4명을 홀로 키워왔다.

어려운 살림 형편에 바느질 삯일, 보험설계사 등을 하며 뒤돌아 볼 틈이 없는 삶이었다.

그는 2011년 팔순 나이에 수필 ‘한라산’으로 서울문학 신인상을 받은 수필가이기도 하다. 또 제주도의 ‘장한 어머니상’ 등 현재까지 70여 개의 각종 상패를 받았다.

김씨는 “시 그리움에서 그리움의 대상은 바로 공부와 삶에 대한 열정”이라며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공부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을 쓰고 읽는 데 어려워하는 주변 할아버지·할머니들을 만나 같이 글공부하는 벗이 되고 싶다”고 작은 꿈도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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