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구조개혁 신속 추진해야”
이창용 IMF 아시아·태평양 담당 국장은 25일(현지시간) “한국경제가 성공신화를 지속하려면 상이한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서 지체돼온 경제구조개혁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국회가 제 역할을 해야한다”고 밝혔다.이 국장은 이날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앞날은 경제부처를 넘어 국회의 노력에 달려있다”면서 이같이 지적했다.
이 국장은 특히 “한국은 제조업 이외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면 사회적 합의기구인 국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뒤에는 해산과 재선거를 반복해온 일본 국회와 그 과정에서 지체된 구조개혁이 있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3%대의 성장률을 고통스러워하지만, 전 세계 성장률이 낮아진 것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무난한 수준이라는 시각도 있다”며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큰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에서 어느 나라가 진정한 실력을 가졌는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음은 이 국장과의 일문일답.
--위안화 하락으로 이어진 중국의 외환정책 변경을 IMF가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는.
▲중국의 환율은 중국외환거래센터가 매일 아침 발표하는 기준 환율을 중심으로 상하 2% 범위에서 결정된다. 지난 11일 발표한 정책의 핵심은 전날 외환시장 종가와 시장 수급을 명시적으로 반영해 기준 환율을 결정하겠다고 밝힌 점이다.
중국에 대해 시장친화적인 외환제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IMF로서는 이번 조치를 바람직한 금융시장 개혁의 하나로 평가한다
--중국의 외환정책 변화가 궁극적으로는 경기부양을 위한 것이라는 시각에 동의하는가.
▲중국은 상당 기간 위안화 가치를 미국 달러화에 연동해 왔지만, 최근 달러화의 강세 추세와 중국 경제성장률 둔화, 미국 금리 상승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위안화 강세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 시장의 평가였다.
오히려 이번 조치는 수출 경쟁력 제고보다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그동안 위안화를 달러화와 연동한 탓에 실물경제가 둔화돼도 이자율이나 지급준비율을 높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조치를 통해 중국이 통화정책을 환율조정 수단이 아니라 경기조절을 위한 전통적 거시경제조정 수단으로 정상화했다는 의미도 있다.
--앞으로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이 없어질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결과 위안화 가치가 더 하락했을 때 아시아 주변국에 미칠 만한 영향은.
▲중국이 순수한 변동환율제도로 이행할지는 위안화 절상 압력이 생겼을 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위안화 가치 하락이 주변국 환율 및 경기에 미치는 영향은 쉽게 전망하기 어려운 문제다. 중국은 글로벌 생산망(supply chain) 내에서 중간재를 수입해 가공한 뒤 완제품을 수출하는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해 오고 있었다. 위안화 변동이 주변국에 주는 영향은 중국과의 생산망 연결고리가 어느 단계에 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원자재 및 중간재를 공급하는 국가라면 위안화의 가치하락으로 중국의 완제품 수출이 늘어나는 것이 반가운 소식이 될 것이다. 중국 기업과 완제품 및 중간재 수출 경쟁을 하는 국가라면 가격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년간 10%대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중국은 올해 6.8%, 내년에는 6.3% 정도 성장할 전망이다. IMF는 중국 성장률 둔화를 중장기적으로 볼 때 바람직한 조정 과정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 10년간 누려온 고도성장 뒷면에 과도한 신용팽창, 지방정부 부채 증가, 주요 산업의 공급 과잉 등 부정적 요인이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한 경착륙을 피하려면 성장률이 자연스럽게 낮아지며 과잉 투자 설비가 조정돼야 한다.
중국으로서는 이런 변화가 바람직하지만, 중국 고속성장 특수를 누려 온 나라에는 좋지 않은 소식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1% 떨어지면 아시아 주변국 성장률은 0.3% 정도 떨어진다고 분석된다. 10%였던 중국 성장률이 7%로 떨어졌으므로 한국의 성장률도 과거보다 1%정도 낮아졌다고 예상할 수 있다.
--그리스 또는 유럽 전체의 경제 전망은.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에서는 지난 6년간의 심각한 경기침체 이후 국제유가 하락과 유럽중앙은행의 확장적 통화정책에 힘입어 드디어 회복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현재 0%에 가까운 물가상승률도 내년에는 1%대에 이를 전망이다.
그러나 높은 실업률로 인한 수요 부족과 기업과 은행의 재무구조 악화, 생산성 저하 등의 위험요인에 거시경제정책 운용의 폭도 좁아 미국에 비해 회복세는 약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통합이나 통합 금융감독기능 부재 같이 이번 위기로 드러난 단일통화 제도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유로화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그리스에 관해서는 현재 (채무상환) 협상이 진행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 언급은 어렵다. 다만, IMF는 그동안 일관되게 그리스 위기의 해결을 위해서는 실질적이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일정 규모 이상의 부채탕감이라는 두 개의 다리(two legs)가 모두 필요하다고 강조해 왔다.
--’아베노믹스’를 비롯한 일본의 경제 상황을 평가한다면.
▲아베노믹스로 일본 경제가 조금씩 활력을 찾고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평가다. 올 상반기 전체로는 완만한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물가도 과거의 디플레이션 늪에서 빠져나와 앞으로 임금 상승과 더불어 점점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지금까지의 성과가 주로 팽창적 통화정책과 엔화가치 하락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그 효과가 지속되려면 아베노믹스의 세 번째 화살인 구조조정이 과감하게 추진돼야 한다.
특히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부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근본 요인이므로 여성과 고령 노동자의 경제활동 참여, 외국인 노동자 확대 등이 시급한 과제들이다. 이는 고령화에 직면한 한국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정말 저성장이 정상 상태라는 ‘뉴 노멀’로 접어들었다고 여겨지나.
▲저성장 기조의 원인에 대해서는 장기 경기침체인지, 부채축소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 후퇴인지를 두고 이견이 있다. 어떤 의견에서든 금융위기 이전에 세계 경제가 잠재성장률 이상의 호황을 누렸기 때문에 당분간 그 정도의 성장률로 되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뉴 노멀’ 여부보다 한국 경제가 신경 써야 할 추세는 세계경제의 위험요인이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옮겨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상품가격의 하락 같은 요인도 있지만, 근본 문제는 신흥국의 중장기 잠재 성장률이 선진국에 비해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흥국들도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생산성 제고보다 유동성 확대에 의존해 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조정은 불가피하다.
최근 아시아 국가들은 선진국이나 다른 지역 신흥국보다 비교해 양호한 (경제)성적을 보였지만, 앞으로는 과거 약 10년간 중국의 고속성장 덕에 손쉽게 누려왔던 혜택이 사라지면서 누가 정말 실력을 갖춘 국가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에서 나오는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는 어떤지.
▲한국 경제를 바라보는 국내외 견해의 차이는 크다. 국내에서는 3% 이하로 떨어진 성장률이 고통스럽고 불만스러울 정도로 낮은 수준임은 물론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 입장에서 보면, 대부분 선진국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 미만의 성장에 허덕여왔던 데 비해 선진국 중 하나인 한국이 3%대 성장을 하고 GDP 대비 7%대의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는 것은 상당히 좋은 성적표라고 보고 있다. 전 세계가 힘든 상황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의 성장률이 과거에 비해 낮아진 것은 당연한 일이며 오히려 상대적으로 사정이 좋은 한국이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환율 변동성을 용인하여 수입을 늘려 세계 경제의 회복에 기여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생활이 어려워졌다고 느끼는 우리 국민은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상황이 더 어려운 선진국 국민들의 인식이 어떻다는 것을 우리도 알 필요가 있다.
또 과거 한국의 눈부신 경제발전 성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이견이 없지만, 앞으로 중장기적으로 한국이 남다른 성장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 온 제조업 중심의 성장구조가 점차 한계에 다다르는 상황에서 서비스 산업 등 비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축을 찾아야 하는데 이해집단의 갈등으로 새로운 경제구조로의 구조전환이 신속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을 국제사회는 잘 알고 있다. 제조업으로 한 때 잘 나가던 일본이 지난 20년간 정체된 과정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유사한 경제구조와 잠재적 문제점을 가진 한국 경제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이지 못한 시각이 많이 늘어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한국 경제는 어떤 과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한국 경제는 제조업 발전만으로 고용과 소득·수출 증대라는 세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었던 수준을 넘어섰다. 임금수준이 올라가고 개도국의 추격이 시작되면서 일본 기업들이 그러했듯 우리 역시 생존을 위해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지 않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생산성 연관 효과를 고려할 때 제조업 발전은 아직 중요한 과제지만, 제조업 하나만으로는 청년실업 해소도, 급격한 성장률 저하에 대한 대응도 어렵다.
제조업과 함께 서비스 같이 다른 성장 동력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할 한국 경제가 이념 논쟁과 이해 갈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장기간 찾지 못하는 일은 안타깝다. 예를 들자면 외국인 환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고용유발 효과를 높이자는 의료산업 국제화 계획은 국내 환자가 역차별을 받을 것이란 우려로 아무런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청년실업을 줄이고 고령화 추세에 대응하려면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개혁이 필요하지만, 노사간 신뢰부족으로 성사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한국 경제의 앞날은 경제부처의 차원을 넘어서 국회의 노력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미 선진국 범주에 진입한 한국경제가 성공 신화를 지속하려면 상이한 이념과 이해관계 속에 지체된 경제구조 개혁이 신속히 추진될 수 있도록 합의 기구로서 국회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뒤에는 고령화뿐 아니라, 해산과 재선거를 반복해온 일본 국회,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체된 구조개혁이 있었음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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