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발레동아리 만들어 재능기부하는 숙명여대 발레리나

“군인발레동아리 만들어 재능기부하는 숙명여대 발레리나

입력 2015-10-26 09:04
수정 2015-10-26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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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박사과정 대학원생, 남양주 비룡부대 군인 30명에게 발레 지도

“아라베스크…, 파세…, 다음은 그랑 바뜨망….”

강당에서 울려 퍼지는 우아한 음악 속에 스승의 힘찬 구호에 맞춰 발레리노들이 연습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머리를 짧게 깎고 활동복을 입은 군인들이다. 이들은 발레 슈즈를 신고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다리를 차고 점프하는가 하면 발끝을 세우고 제자리를 도는 연습을 하고 있다.

26일 숙명여대에 따르면 이 학교 무용과에서 발레를 전공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박선우(29·여)씨는 올해 7월부터

발레리나 박선우씨가 경기 남양주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비룡부대 군인 30명에게 발레를 지도하고 있다.
발레리나 박선우씨가 경기 남양주 청소년수련관 강당에서 비룡부대 군인 30명에게 발레를 지도하고 있다.

여성성이 강한 무용으로 알려진 발레와 딱딱한 이미지인 군인과의 만남은 어색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장병들의 실력이 제법 늘었고 부대 안팎에서 반응도 좋다.

박씨가 군 장병에게 발레를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은 몇 년 전 공군에서 복무한 남동생의 면회를 가면서다.

“상대적으로 공군은 그래도 편한 군대라고 들었는데, 면회실에 온 남동생이 부대 동기 중 한 명이 군 생활을 너무 힘들어한다는 거예요. 그리곤 얼마 뒤 그 친구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게 돼 깜짝 놀랐어요.”

박씨는 “몸을 이용해 감정을 표현하는 무용은 자신의 내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기에 활력과 자신감을 느끼게 한다”며 “항상 긴장하며 군 생활을 해야 하는 장병에게 발레를 가르치면 분명히 체력적·정신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언론을 통해 군 관련 사고 소식이 들릴 때마다 전공을 살려 장병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점점 커졌다.

올해 초 그는 이런 생각을 정리해 국방부 홈페이지에 ‘재능기부’를 하고 싶다는 글을 올렸다. 처음엔 ‘불가’ 태도를 보이던 국방부의 담당자를 찾아 직접 전화를 거는 등 설득해 결국 발레 수업을 원하는 부대를 찾으면 허가하겠다는 답변을 끌어냈다.

군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박씨였지만, 박사학위 지도교수인 박인자 교수의 도움을 받아 올해 7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비룡부대와 인연을 맺고 발레 동아리를 열었다.

일단 물꼬는 텄지만, 매주 2시간씩 발레 수업을 하는 것이 녹록지만은 않았다.

발레 공연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군인들을 모아놓고 기초부터 가르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인사에 답도 하지 않거나 눈을 못 맞추고 땅만 보는가 하면 2시간 동안 말 한마디 안 하고 돌아간 친구도 있었어요. 과연 이 수업을 오래할 수 있을까 걱정됐던 어색한 첫 수업을 잊을 수가 없네요.”

그러나 3개월이 지난 지금 발레 동아리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기본적인 발레 동작을 거뜬히 소화할 뿐 아니라 어려운 동작도 제법 따라 하는 장병도 나왔고, 팀별 발표에서 기발한 구성과 안무를 선보이는 장병도 많아졌다.

그뿐만 아니다. 장병들은 구부정했던 자세가 바르게 교정되는 등 외적인 변화와 함께 군 생활의 어려움이나 개인사, 꿈 등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워졌다. 박씨가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다.

“동아리에 소위 관심병사로 분류된 장병도 있었다는데, 그런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이젠 모두가 활기 넘치고 밝은 모습으로 변했어요. 이젠 오히려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치유가 되는 느낌이에요.”

그는 내년 초 동아리 장병들을 데리고 발레 공연을 하는 구상도 한다고 했다.

발레뿐 아니라 음악 밴드, 차력 동아리 등 여러 동아리와 함께 합동 공연을 열어 부대 장병과 주민들이 함께 모여 즐기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이다.

이 발레 동아리를 통해 재확인한 발레의 긍정적인 효과를 학술적으로 정리해 소개하고 싶다는 그는 발레 동아리가 다른 부대에도 많이 확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우리나라의 발레는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인데, 일반인들이 이를 접할 기회는 아직 적은 것 같다”며 “앞으로 발레의 저변을 넓히는 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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