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흔두 살 해녀의 굿바이… “죽어도 물질허멍 살젠”

아흔두 살 해녀의 굿바이… “죽어도 물질허멍 살젠”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4-06-03 00:53
수정 2024-06-03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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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해녀 9명 첫 공식 은퇴식

마지막 입수로 77년 물질 마무리
베테랑답게 10초 만에 전복 수확
이사장 “바다의 보물 대접받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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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에서 처음 은퇴식을 한 해녀들과 김성근(앞줄 왼쪽 첫 번째) 귀덕2리어촌계장, 양영철(네 번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 양종훈(맨 오른쪽)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이사장이 하트 모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에서 처음 은퇴식을 한 해녀들과 김성근(앞줄 왼쪽 첫 번째) 귀덕2리어촌계장, 양영철(네 번째)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 양종훈(맨 오른쪽)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이사장이 하트 모양 포즈를 취하고 있다.
“죽어서도, 다시 태어나도 물질허멍 살젠.”(죽어서도, 다시 태어나도 물질하면서 살고 싶어.)

따사로운 봄 햇살이 푸른 바다 위에서 출렁이던 지난달 25일 오후 제주시 한림읍 귀덕2리 포구. 최고령 해녀인 김유생(92) ‘삼춘’이 강두교(91) 삼춘과 바다에서 마지막 ‘물질’을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삼춘은 제주에서 남녀를 구분하지 않고 윗사람을 친근하게 부를 때 쓰는 표현이다.

김 할머니는 열다섯 살 때부터 지금까지 77년간 물질 인생을 살았다. 남편과 일찍 사별하고 홀로 5명의 자식을 키워 낸 그는 이날 베테랑 해녀답게 10여초 만에 전복과 소라를 건져 올렸다. 이를 지켜보던 해녀학교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은 경탄을 하며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냈다. 삼춘들의 마지막 물질을 지켜보던 주민들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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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은퇴식에서 김 계장이 최고령 해녀 김유생 할머니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모습.
해녀 은퇴식에서 김 계장이 최고령 해녀 김유생 할머니에게 공로패를 전달하는 모습.
김 할머니는 물질 뒤 “지금도 바다에 가면 어떤 돌에 뭐가 있는지 만지기만 해도 다 아는데…. 나이가 들어 소라 전복 잡은 테왁(두렁박)을 더는 들어올리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나 죽걸랑 소랑 바당에 뿌려도라. 죽어서도 물질허멍 살켜 고라수다”라고 말했다. ‘죽은 뒤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주면 저승에서도 물질하며 살겠다’라는 뜻이다. 정영애(72) 귀덕2리해녀회장은 “지난해까지 삼춘들과 늘 물질했는데 이젠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귀덕2리 어촌회관에서는 해녀들의 은퇴식 행사가 치러졌다. 70년 넘게 물질을 한 김유생, 강두교, 김신생(83), 김조자(89), 박정자(86), 부창우(83), 이금순(89), 홍순화(79), 홍희성(86) 해녀 등 9명은 하얀 저고리에 검정 치마를 입고 참석했다. 해녀들의 공식 은퇴식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김성근(한수풀 해녀학교장) 귀덕2리 어촌계장은 “올해와 내년 물질을 그만두는 해녀분들이 많아 양종훈 제주해녀문화예술연구협회 이사장과 함께 은퇴식을 준비하게 됐다”고 말했다.

해녀들의 삶을 앵글에 담아 온 사진작가이기도 한 양 이사장은 이날 잠수복을 입고 마지막 물질의 순간을 찍기 위해 해녀 삼춘들과 여러 차례 바다로 뛰어들었다. 양 이사장은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제주 해녀 삼춘들이 한국의 보물로 대접받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로 제주 해녀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에 등재됐지만 나이가 들면 조용히 뒤안길로 사라졌다. 양영철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이사장은 이날 은퇴하는 해녀들에게 스카프를 전달하며 “현역 해녀들이 자신의 손녀들에게도 ‘해녀를 해 보라’고 권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2024-06-03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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