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반공포로로 41년간 타국을 떠돌다 음성 꽃동네에서 거주하던 김남수씨가 지난 2일 충북 음성 꽃동네 인곡자애병원에서 노환으로 숨졌다. 83세. 그의 인생에는 한국의 아픈 현대사가 투영돼 있어 주위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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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서 죽음맞은 ‘76인의 포로’ 김남수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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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동네서 죽음맞은 ‘76인의 포로’ 김남수씨 연합뉴스
강원도 고성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3학년(당시 17세) 때 6·25가 터지자 인민군 징집을 피해 피신했다. 그러나 함경남도 원산에서 인민군으로 몰려 국군 포로 신분이 돼 거제도 포로수용소로 이송됐다. 1953년 반공포로 석방이 이뤄지자 그를 포함한 ‘76인의 포로’는 전쟁이 싫다며 제3국행을 택했다. 그는 인도 등을 거쳐 브라질에 정착했다. 그러나 빈손으로 시작한 타국 생활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자신을 ‘조센진’이라고 비하하는 일본인을 살해해 27년간 감옥과 정신감호소 등을 전전했다. 1993년 MBC가 ‘76인의 포로’를 특집방송으로 다루면서 그의 소식이 국내에 알려지자 귀환운동으로 이어졌고, 음성 꽃동네가 그를 받아 줬다. 이후 20여년간 꽃동네 부랑인 요양원 등에서 생활하다 지난 2일 생을 마감했다. 꽃동네 관계자는 “최근 1∼2년간 노환과 치매 등으로 고생했다”면서 “한국전쟁의 피해자인 김씨가 하늘나라에서는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음성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2015-02-04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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