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8) 동물과의 ‘프렌치 키스’

[어른들을 위한 동물원 이야기] (28) 동물과의 ‘프렌치 키스’

유영규 기자
유영규 기자
입력 2011-11-08 00:00
수정 2011-11-08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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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딥 키스(Deep Kiss)´ 혹은 ‘프렌치 키스(French kiss)’. 이 단어는 ‘이 순간만은 모든 걸 당신에게 바칠 수 있어요.’라는 진한 몸짓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수의사인 나는 사람에게 잘 못하는 진한 키스를 동물들에게는 가끔 퍼붓는다. 변태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고 더럽다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 터이지만, 아무튼 이 사실은 가족에게도 숨겨왔던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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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과의 키스 행각은 나의 독특한 행동이 아니다. 배운 것이다. 이를 처음 경험한 것은 인턴시절 별로 갖춘 것이 없던 작은 동물병원에서였다. 이 병원의 원장님은 제왕절개 후 숨을 못 쉬는 새끼를 서슴없이 자기 입으로 가져가 빨아댔다. 그러자 새끼는 발그레해지며 “깽깽”하는 소리를 지르며 생기를 찾았다. 그 분이 오버(over)를 했을 수 있지만, 햇병아리 수의사인 나에게 그것은 프로 수의사다운 위대한 작업으로 보였다.

 그 후 나도 수술 후 원장님이 건네준 강아지를 서슴없이 쭉쭉 빨고 있었다. 강아지를 빨면 빨수록 내 목에 양수가 걸린 것처럼 시원스레 제거해 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그 강도는 더욱 세졌다. 키스 습관은 젖소 목장에까지 이어졌다. 이곳의 선배 수의사도 양수를 먹은 송아지 코를 빠는데 주저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로선 동물병원에서 이를 경험한 바 있는데다 선배가 빠는데 쳐다만 볼 수 없었다. 처음엔 부담스러웠지만 그 다음에는 습관처럼 됐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대개 혐오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저 더러운 걸, 병균이라도 들어가면 어떡해.”라는 염려스런 조언도 한다. 충분히 일리가 있다. 새끼가 출산하는 과정에서 어미의 뒷부분 분비물이 묻어 나와 꽤 오염돼 있다. 주로 대장균이다. 그러나 그 양은 평상시 우리 손에 묻은 것보다 조금 많은 정도다. 브루셀라(brucella·소에게 유산을 일으키는 인수 공통전염병)같은 성병이 감염될 수 있다. 그러나 이 병의 주요 증상은 어미소의 유산이므로 새끼가 완벽하게 자라나온 것은 괜찮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런 것을 다 계산했다면 절대로 빨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게 신의 뜻일 뿐이다.

 최근 내가 근무하는 동물원에서 하등동물로 취급받는 바바리양(barbary sheep)이 태반을 둘러쓰고 나오면서 양수를 들이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순간 이것저것 재어볼 겨를이 없었다. 즉시 새끼의 코를 입안에 가득 물고 호흡기 속의 양수를 쪽 빨아 올렸다. 짭짜름한 양수와 비린내가 입안에 확 몰려 들었다. 그리고 “애앵”하며 새끼가 기운을 차렸다. 침을 뱉고 나서 돌아보니 주변 사람들이 넋나간 사람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다. 이들은 지금까지 이런 장면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모양이다. 이들이 이 장면을 두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모를 바는 아니다.

 최종욱 광주우치동물원 수의사 lovna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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