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콘에서 본 2022년 이후 K컬처의 미래
美서 주류 음악 진입 분기점 지나
K콘텐츠, 팬데믹 계기 디지털화
가정에서 가족과 즐길 음악 각광
한국식 시스템 담은 그룹 배출해
美·日 등 선진 시장에서 성장해야
하이브, 이타카 인수 플랫폼 발판
UMG와 현지 보이그룹 데뷔 추진
처음부터 韓 아닌 글로벌 무대로
우리의 DNA인 스토리텔링 강점
CJ ENM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사흘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최한 ‘케이콘 2022 LA’에는 9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전 세계 케이팝 팬들과 아티스트들이 만나 함께 소통하며 즐기는 축제의 장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CJ ENM 제공
케이콘은 CJ ENM이 지난 19일부터 21일까지 미국 LA에서 진행한 대형 이벤트다. 주최 측은 케이콘이 올해로 10년이 됐으며 지난 사흘간 9만명의 관객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이 행사는 10년 전인 2012년 캘리포니아주 어바인에서 처음 개최됐다. 케이팝 가수들의 콘서트뿐 아니라 전시 컨벤션도 동시에 열면서 ‘산업’으로서 케이팝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케이콘 10년… 올해 행사 9만명 참가
10년 전 미국 시장에서는 ‘한국식 팝 공연이 흥행할 수 있는가’란 의문이 있었지만 이제 케이팝은 당당히 미국 내 서브컬처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을 뿐 아니라 주류 음악으로 가는 분기점을 지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미국 엔터테인먼트 전문 매체 ‘버라이어티’(Variety)는 최근 펴낸 잡지에서 ‘한류가 큰 영향을 만들어 냈다’(Korea Wave Hits With Big Impact)라는 기사를 통해 “팬데믹 이후 급성장하고 있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규칙이 재정의됐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성장하던 케이콘텐츠는 팬데믹을 계기로 디지털화를 통해 글로벌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평가했다.
팬데믹 이후 미국에서 가족이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늘면서 가사 내용이 건전하고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케이팝 장르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음악으로 각광받은 것. 이 시기 미국에서 케이팝은 ‘한국인이 만들고 한국인이 즐기는 음악’을 넘어 ‘가족 모두 즐길 수 있는 흥겹고 프로페셔널한 음악’이란 인식이 퍼졌다. LA 현장을 찾은 9만명의 관객이 이를 증명했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대히트를 기록하고 CJ ENM이 미 어바인에서 1만명을 모아 놓고 케이콘을 시작한 게 2012년이다. 2012년은 케이팝의 분기점이 된 시기였다. 10년 후인 2022년은 케이팝의 아이콘이 된 BTS가 빌보드 뮤직 어워즈를 수상하고 백악관에 정식으로 초대받는 등 한 차례 정점을 찍은 해로 인식됐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서브컬처에서 메인스트림으로 미국에서 도약하기 시작한 케이팝과 케이컬처는 어떻게 다가오는 10년을 준비해야 할까. 케이콘 현장에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었다.
행사장인 LA컨벤션센터에서 관객들이 케이팝을 즐기는 장면.
CJ ENM 제공
CJ ENM 제공
케이팝은 10대 어린 나이 데뷔, 연습생 경험,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 집단 창작, 칼군무, 기획사 시스템 등 한국식 문화 공장 시스템이 낳은 독특한 결과물로 꼽힌다. 거대 음악 시장인 미국과 일본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시스템이었다. ‘노예 계약’, ‘카피캣’, ‘반인권적 경쟁 제도’ 등 적잖은 부작용을 낳았지만 아시아의 작은 국가에서 시작된 음악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산업화됐으며 하나의 장르로 인식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싸이, BTS, 블랙핑크 등의 글로벌 스타가 탄생하며 성장의 기폭제가 됐다.
이제는 한국 문화를 수출한다는 개념에서 벗어나 미국, 일본 등의 선진 시장에서 한국식 시스템을 담은 그룹이 나와 각 시장에서 성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케이팝, 케이컬처란 한국인이 한국인을 위해 만든 문화가 아니라 한국식 시스템을 통칭하는 말로 정의해야 하며 글로벌 확산을 위해서는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이 추구하는 ‘플랫폼 전략’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CJ ENM이 케이콘을 꾸준히 개최하고 하이브가 지난해 미국의 유명 미디어 레이블인 이타카홀딩스를 약 1조원에 인수합병한 것이 플랫폼의 발판이 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하이브는 세계 최대 음악·음반 유통사인 유니버설뮤직그룹(UMG)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 보이그룹 데뷔를 추진하고 있다.
케이콘 2022를 기획한 김현수 CJ ENM 음악콘텐츠본부장은 더밀크 등 현장 취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과거엔 케이컬처를 소개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콘텐츠와 미래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는 플랫폼이 돼야 한다. 올해는 그 첫걸음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日 아이돌 INI 본 투 글로벌 사례
음악, 영화 등의 문화 콘텐츠에는 만국의 언어로 세계인이 즐길 수 있는 힘이 있다. 한국의 ‘오징어 게임’이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케이컬처를 넘어 ‘케이스토리텔링’의 힘을 증명한 것처럼 이제는 처음부터 한국이 아닌 글로벌 무대에서 데뷔하는 ‘본 투 글로벌’(Born 2 Global)을 추구한다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다는 평가다.
실제 케이콘 2022에서 미국 데뷔 무대를 가진 일본의 11인조 아이돌 보이그룹 INI는 ‘본 투 글로벌 케이팝’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일본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재팬’ 시즌2에서 선발됐으며 11명 중 10명이 일본 국적(1명은 중국 국적)이다. 그러나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한 데뷔, 음악의 특성이나 칼군무, 메이크업,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홍보 등은 전형적인 케이팝의 공식을 따르고 있다. 일본 아이돌 스타들은 합숙을 하지 않고 전원 출퇴근을 원칙으로 하지만 이들은 한국식 합숙과 일본식 출퇴근을 결합한 ‘빌리지 시스템’(한 숙소가 아닌 같은 아파트 단지 내에 11명이 각각 거주)을 만들어 움직이고 있다. INI는 이번 케이콘에서 한 곡은 일본어로, 한 곡은 한국어로 불렀다.
INI의 다지마 쇼고는 인터뷰에서 “일본은 멜로디가 중심이고 감성적인데, 한국에서 살아 보니 한국은 음악적 장르가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또 한국은 연습량이 많다. 연습을 많이 해서 만들어 간다는 인식이 있다. 우리는 제이팝과 케이팝의 강점을 섞어서 INI 팝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케이팝 시스템 아래 일본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실제 이들은 일본 전통의 오리콘차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앤절라 킬로렌 CJ ENM 아메리카 대표는 “예전엔 여성이 케이팝의 중심이었는데 이젠 남성도 많다. 과반수가 아시안이었는데 이젠 인종이 다양해졌다. 케이팝은 디지털을 통해 확산했지만 현장 경험으로 강화된다. 우리의 DNA인 스토리텔링을 강점으로 내세운다면 충분히 앞으로의 10년을 기대해 볼 만하다”고 평가했다.
더밀크 대표
2022-08-25 2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