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大기질 요즘 정치엔 안맞아 지연·학연 넘는 탕평인사 해야”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고려대 자부심’은 대단하다. 그가 지난해 펴낸 자서전 ‘정치 에너지’를 보면 힘든 가정 형편 때문에 고등학교를 3번이나 옮긴 끝에 고대 법학과(71학번)에 들어갔던 추억이나, 교내 운동권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총학생회장이 되는 과정 등이 자랑스럽게 펼쳐진다.드러내 놓고 고대 출신임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편한 술자리에서 종종 아들과 딸이 모두 연세대를 졸업한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웃는 낯으로 악수하는 사진이 보도되면 호사가들이 “고대 선배라서 깍듯이 모시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지기도 한다.
그런 정 대표에게 ‘고대 요직 독식’ 논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고려대 총장을 지낸 어윤대 국가브랜드위원장이 KB금융지주 회장에 오르면서 독식 논란은 정부, 공기업을 넘어 민간 금융기관으로까지 옮겨갔다.
정 대표는 “난 ‘민족고대’ 출신”이라며 말을 아꼈다. 다만 “탕평인사는 누구에게나 중요하고, 지연·학연을 넘어 이뤄져야 한다.”면서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안 된다는 식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고대 출신 정치인이 많지 않으냐는 질문에 정 대표는 “지금은 고대 출신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이 별로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다만 “과거 남성 중심의 대학 문화, 강력한 데모 등 학교 특유의 분위기가 학생들의 ‘야성’을 키운 것 같다.”면서 “과거에는 이른바 ‘고대 기질’이 정치하는 데 적합했는지 모르겠지만 시대가 바뀐 요즘은 별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고대가 자신을 정치로 이끈 하나의 계기가 됐음도 부인하지 않았다. 정 대표는 “4·19 혁명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이 많아 나 같은 ‘촌놈’이 꿈을 키우기에 좋은 학교였다.”고 말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2010-06-22 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