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부 기자로 잔뼈가 굵은 정통 언론인 출신으로 지난 7월 청와대 참모진 개편으로 잠시 물러났다가 청와대 언론특별보좌관으로 복귀했다.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 비교적 뒤늦게 공보특보로 합류했으나 폭넓은 대(對) 언론 관계와 특유의 정치감각으로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 이어 현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약 1년 6개월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순발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대통령의 입’으로서 성공적인 역할을 해냈고,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09년 8월에는 홍보수석으로 임명됐다.
하지만,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여권이 당.정.청 쇄신 논란을 겪을 때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공격대상이 됐고,올해 7월 이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뜻에서 ‘순장(殉葬) 3인방’으로 불렸던 박형준 박재완 전 수석과 함께 청와대를 떠났다.
동아일보 도쿄(東京) 특파원을 거쳐 정치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으며 한국기자상,서울언론상,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상 등을 수상했다.
부인 김현경씨(47)와 1남 2녀.
△서울(53)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공보특보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 비서관
연합뉴스
이동관 靑 언론특보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이명박 대통령 캠프에 비교적 뒤늦게 공보특보로 합류했으나 폭넓은 대(對) 언론 관계와 특유의 정치감각으로 이 대통령의 신뢰를 받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에 이어 현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다.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약 1년 6개월간 대변인으로 활동하면서 순발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로 ‘대통령의 입’으로서 성공적인 역할을 해냈고,이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바탕으로 2009년 8월에는 홍보수석으로 임명됐다.
하지만,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여권이 당.정.청 쇄신 논란을 겪을 때마다 한나라당 소장파의 공격대상이 됐고,올해 7월 이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뜻에서 ‘순장(殉葬) 3인방’으로 불렸던 박형준 박재완 전 수석과 함께 청와대를 떠났다.
동아일보 도쿄(東京) 특파원을 거쳐 정치부장,논설위원 등을 지냈으며 한국기자상,서울언론상,믿음으로 일하는 자유인상 등을 수상했다.
부인 김현경씨(47)와 1남 2녀.
△서울(53)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하버드대 니만 펠로우 △동아일보 도쿄 특파원 △동아일보 정치부장.논설위원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후보 공보특보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 비서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