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봉투 사건’으로 중도낙마한 박희태 의장

‘돈봉투 사건’으로 중도낙마한 박희태 의장

입력 2012-02-09 00:00
수정 2012-02-09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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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태 국회의장이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이 불거진 지 한 달여만인 9일 전격 사퇴했다.

2008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한 박 의장은 고승덕 의원 등에게 돈 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아왔고, 현재 이를 둘러싼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박 의장은 그동안 돈 봉투 사건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밝혀왔다.

하지만 박 의장의 전 비서인 고명진씨가 당시 돈 봉투 사건의 구체적 정황에 대해 검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박 의장은 임기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중도 하차’를 택했다.

지난 1993년 4월 재산 파동에 휩싸인 박준규 국회의장이 의장직을 사퇴한 이후 19년만에 이뤄진 입법부 수장의 불명예로 기록될 전망이다.

박 의장은 지난 2008년 18대 국회 들어 가파른 ‘등락’을 거듭했다.

검사장 출신으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 지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박 의장은 17대까지 경남 남해ㆍ하동에서 내리 5선을 했고, 4년3개월 간 민정당ㆍ민자당 대변인을 역임하면서 촌철살인의 논평으로 ‘당대 최고의 명대변인’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또한 민정당 때부터 한나라당에 이르기까지 원내총무, 부총재, 최고위원 등 두루 당직을 섭렵했다. 지난 2007년 대선 때는 이명박 후보 측 ‘6인 회의’ 멤버로 MB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하지만 18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 ‘6선 고지’를 밟지 못하는 정치적 시련을 맞았다. 그렇지만 공천 탈락이라는 아픔은 잠시였다. 박 의장은 절치부심하며 ‘정치적 대반전’에 나섰다.

18대 국회 들어 첫 개최된 2008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통해 집권여당 당 대표에 오른 데 이어 2009년 10ㆍ28 경남 양산 재보선에서 당선, ‘노(老)정치인’의 저력을 과시했다.

나아가 2010년 18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에 오르며 6선 의원 박 의장은 정치인생의 정점에 섰다.

그러나 입법부 수장으로서 명예롭게 정치인생을 마감하려던 당초 계획도 돈 봉투 사건이 불거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지난 20여년간 정치권에 몸담으로면 산전수전을 겪은 그였지만, 검찰 수사가 옥죄어 오면서 국회의장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전격 사퇴를 선언했다.

박 의장은 지난달 18일 4ㆍ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번 사태를 막기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박 의장은 이날 한종태 국회대변인을 통해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한다”며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이에 앞서 박 의장은 문민정부 초반인 1993년 법무부장관에 임명됐으나 딸의 대학 특례입학 논란으로 취임 10일만에 물러난 바 있다. 또한 2008년 7월 임기 2년의 한나라당 당 대표로 선출됐으나, 이듬해 10월 경남 양산 재보선 출마로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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