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섞인 말투·행동…안중근기념관 헌화사진 공개하며 취재진 다그쳐 ”거짓말인지 취재해보라” 사실보도 요구…”너무 흥분했다”며 발언 마무리
문창극 총리 후보자의 19일 퇴근길은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반드시 가겠다는 의지를 공개적으로 작심한 듯 드러내는 자리였다.중앙아시아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이 자신에 대한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 재가를 주말까지 미루면서 정치권을 중심으로 자진 사퇴론이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절대 사퇴는 없다”고 쐐기를 박는 장면을 연출한 것.
자신이 이날 오전 출근길에 ‘나인 투 식스(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라고 예고한 것처럼 문 후보자는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집무실이 있는 정부서울청사 창성동별관에서 퇴근길에 올랐다.
그러나 그동안 취재진의 질문 2∼3개에 짧게 답했던 여느 퇴근길과는 달랐다. 그는 별관 로비에 선 채로 무려 20여분간 발언을 이어갔다. 코너에 몰린 문 후보자의 ‘작심 로비회견’이었던 셈이다.
문 후보자의 이러한 행보는 과거 교회 및 대학 강연에서 자신이 한 발언이 공개되면서 ‘식민사관’ ‘친일사관’ 논란이 불거진 뒤 부정적 여론이 확산됐고, 야당뿐 아니라 여당 내에서도 ‘사퇴 불가피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분위기 반전을 시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자신을 후임 총리로 낙점한 박 대통령마저 21일 귀국 이후 임명동의안 재가 검토 방침을 밝히면서 궁지에 몰리자 그야말로 ‘셀프 구원작업’에 들어갔다는 인상까지 줄 정도였다.
문 후보자는 특히 안중근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밝히면서 총리 후보자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다소 감정이 실린 어투와 행동을 보이며 자신이 ‘친일파’로 매도되는 것에 대한 억울함을 강하게 표출했다.
문 후보자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그 안에서 안경을 꺼내면서 “노안이라서 작은 글씨는 볼 수가 없다. 너무 작잖아. 그래서 안경을 끼고 여러분께 말씀드리겠다”며 안 의사에 대해 쓴 자신의 과거 칼럼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어 “저는 식민지 사관이 뭔지 뚜렷이 모른다. 왜? 저는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이라며 “그렇지만 저는 나라를 사랑하셨던 분, 그 분은 제가 가슴이 진짜 시려오도록 그분을 닮고 싶다”고 강조했다.
안 의사에 대해 “제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밝히면서 “안 의사 공부를 많이 한 것을 여기서 자랑하는게 아니다”라고 했다. 또 안 의사가 재판을 받고 수감됐던 중국 뤼순의 감옥과 재판정을 직접 다녀온 일을 공개하면서는 “아…가슴이 떨려오는 것을 전 느꼈다”고 말했다.
안 의사와 관련한 자신의 칼럼 일부분을 발췌해 읽을 때에는 “제가 그 감정을, 느낌을 썼다”고 수차례 강조했다.
세종대에 출강해 ‘국가와 정체성’이란 강의를 했음을 소개할 때는 ‘친정격’인 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여러분 지금까지 취재를 안하시는데”라고 운을 뗀 문 후보자는 “여러분 내일 당장 가보라. 일일이 잡고 물어보라. 정말로 문창극 교수가 너희들한테 소위 친일을 가르쳤느냐, 아니면 너희들한테 반민족을 가르쳤느냐. 한번 물어보라. 진짜 물어보라. 그런데 거기서 또 한 명만 딱 (발언을) 따가지고서 그랬다 그렇게 하지 마시고 될 수 있는대로 많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라. 저는 지금도 떳떳하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문 후보자는 자신이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 헌화한 사진을 공개할 때는 “마지막으로 자랑일 것 같아 공개 안하려 했는데 이건 사실이다. 사실에 바탕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사진에 나온 ‘이 꽃은 문창극님께서 헌화해 주셨습니다’라고 쓰인 글귀를 취재진 가운데 읽어 달라고 즉석에서 요구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자 문 후보자는 “한글 모르시나. 이것도 읽어줄 모르나”라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기자들을 다그쳤으며, 글을 읽겠다고 나선 ‘자원자’의 목소리가 작자 중간에 끊고 “크게 하세요. 크게. 다들 알아듣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헌화한 배경을 설명한 뒤 “2011년 6월이다. 여러분 내일 당장 가시라. 내일 당장 안중근 기념관 가서 이게 거짓말인지 한번 취재해보라. 사실이면 사실대로 보도해달라”고 요구했다.
문 후보자는 박 대통령이 귀국하는 오는 21일 전까지 계속 이런 형태로 자신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겠다고 예고했다.
문 후보자는 “제가 너무 흥분했다. 오늘은 이것으로 끝내고 제가 내일 또 여러분 뵙겠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그의 거칠고 투박한 ‘퇴근길 메시지’는 분명했다. 자신의 역사관은 친일에 뿌리를 두지 않고 있으며, 절대로 인사청문회 전에 스스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