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어지는 총리 공백…역대 최장 3개월간 비워두기도

길어지는 총리 공백…역대 최장 3개월간 비워두기도

입력 2015-05-12 07:18
수정 2015-05-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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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정사 총 9차례 공백…청문회·서리제 폐지이후 빈번해지고 길어져

‘국정 2인자’인 국무총리의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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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 빈자리
국무총리 빈자리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할 때 이완구 국무총리의 사퇴로 총리 자리(왼쪽 2번째)가 비어 있다.
연합뉴스
12일로 이완구 전 총리가 물러난 지 2주가 넘었다. 사실상 총리로서의 역할이 사라진 지난 20일 사의를 표명한 때부터 따지면 3주가 지났다.

지금까지 우리 헌정사에서는 총 9차례 ‘총리 공백’이 발생했다. 노무현정부 이전에는 총리서리제가 있어 총리로 공식 취임하기 전에 총리서리로 임명돼 총리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갖고 활동함으로써 공백이 많지 않았다.

정부조직법에 따르면 총리 공백시에는 부총리를 비롯해 법에 명기된 각 부처의 서열에 따라 해당 장관이 그 직무를 대행하게 된다.

지금까지 총리 공백은 총리 또는 총리 후보자가 도덕성 논란에 휘말려 낙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공백이 발생한 경우도 있었다.

총리 공백이 가장 길었던 때는 지난 1984년 11월 제5 공화국 때다.

당시 진의종 총리가 뇌일혈로 쓰러지면서 1985년 2월 후임 노신영 총리가 임명될 때까지 3개월간이나 총리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당시 신병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이 총리 직무대행을 했다. 부총리가 직무대행을 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다.

노태우정부와 김영삼정부에서는 총리 공백 사태가 없었다.

하지만 2000년부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도입돼 총리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엄격해지면서 총리 공백 사태는 더 빈번해졌다.

이전까지는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뒤 국회 본회의 임명동의 표결만 통과하면 총리가 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총리후보자는 의원들을 상대로 표단속만 잘하면 총리가 되는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가 도입되면서 총리 후보자들은 본회의 임명동의 표결이라는 마지막 관문에 앞서 더 까다로운 ‘여론의 벽’을 먼저 넘어야 했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2000년 5월 당시 박태준 총리가 부동산 명의 신탁 의혹 속에 중도 낙마하면서 총리 부재 상황이 빚어졌다.

이로써 당시 이헌재 재정경제부 장관이 총리직을 대행했으며 6일만에 이한동 총리서리가 임명되면서 대행체제를 마감했다. 특히 당시에는 부총리제가 폐지된 상황이어서 이헌재 장관은 부총리가 아닌 장관으로서 총리직을 대행했다.

그 이후부터는 ‘인사청문회의 악몽’이 시작됐다.

2002년 7월 이한동 총리가 물러나고 당시 장상 이화여대 교수가 총리 서리에 임명됐지만 아들의 이중 국적 문제, 부동산 투기 의혹, 위장 전입 의혹 등이 불거지면서 인사청문회에서 논란을 겪은 뒤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됐다

이로 인해 당시 전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8일 동안 총리직무를 대행했다.

이어 장대환 당시 매일경제신문 사장이 총리 서리로 임명됐지만, 장 서리 역시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 의혹 등에 휘말리면서 국회 임명동의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전윤철 당시 부총리는 후임 총리서리로 김석수 대법관이 임명될 때까지 또다시 12일간 총리 직무대행을 맡았다.

노무현정부에서는 총리서리제를 없애면서 총리 공백 기간이 훨씬 길어졌다. 특히 이전 총리가 사퇴한 뒤 후임 총리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될 때까지는 어김없이 총리 공백이 발생했다.

2004년 5월24일 고건 총리가 물러나고, 6월30일 당시 이해찬 의원이 인사청문회를 거쳐 총리로 공식 임명될 때까지 한 달 이상 총리 자리가 비어 있었고, 당시엔 이헌재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총리 대행을 했다.

또 2006년 3월15일 이 총리가 ‘3·1절 골프 파문’으로 물러난 이후 4월20일 한명숙 의원이 총리로 취임할 때까지 당시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총리직을 대행했다.

이어 2007년 3월7일 한명숙 총리가 물러나고, 후임으로 한덕수 총리가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임명되는 4월2일까지는 당시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이 총리 역할을 했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한차례 총리 공백이 있었다. 2010년 8월29일 정운찬 총리가 퇴임하고 그해 9월30일 김황식 총리가 취임하기 전까지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 총리를 대행했다.

특히 당시 후임 총리로 지명을 받은 김태호 후보자가 ‘거짓말 논란’으로 청문회 과정에서 중도 낙마하면서 총리 공백 기간이 길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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