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이엔젤 등 2척, 러서 ‘세탁’된 北 석탄 작년 10월 한국으로 반입
작년 10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상 금수 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국내로 실어 나른 외국 선박 2척이 그 후로도 빈번하게 한국을 왕래 중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정부가 대응에 부심하고 있다.문제의 선박은 파나마 선적인 ‘스카이 엔젤’호와 시에라리온 선적인 ‘리치 글로리’호다.
최근 공개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 보고서에 따르면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환적된 북한산 석탄이 스카이 엔젤과 리치 글로리에 실려 작년 10월 2일과 같은 달 11일 각각 인천과 포항으로 들어왔다. 이들 두 선박이 한국으로 들여온 북한산 석탄은 총 9천여 t인 것으로 파악됐다.
두 선박은 작년 10월 이후로도 수시로 국내 항구를 드나들었으며 심지어 20일에도 한국 영해를 포함한 근해를 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민간 선박정보 사이트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스카이 엔젤호는 현재 중국 랴오닝 성 바위취안(발<拔에서 손수변 대신 魚>魚圈)항을 출발해 러시아 연해주의 나홋카 항으로 향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마린트래픽에 기록된 ‘스카이 엔젤’호의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신호를 보면 이 선박은 한국 남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 중으로, 이날 오전 6시 20분께 부산 근해에서 포착됐다.
리치 글로리호의 경우 일본 히가시하리마항에서 출발해 중국 장쑤 성 장인(江陰)항으로 항해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일본 규슈와 혼슈 사이 해협 및 쓰시마섬 근해를 지나 제주도 방향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두 선박이 북한산 석탄을 한국에 반입한 일과 관련, 한국 측 수입업자들에 대해서는 관세법 위반(부정수입) 혐의로 조사를 벌이고 있지만 두 선박을 억류하는 데 대해서는 신중한 입장이다.
노규덕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관계 당국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에 따라서 필요할 경우 처벌도 이뤄질 것”이라고 강경한 기조를 밝혔으나 두 배를 억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조사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고만 밝혔다.
사실 우리 정부의 이런 신중한 태도는, 일본 영해를 지나는 데도 일본 정부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 상황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해 해당 선박들이 대북제재 이행 의무를 어겼더라도 구체적인 물증이 없기 때문에 억류 등의 조치를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정부가 현재 억류 중인 선박은 ‘선박 대 선박 간’ 이전 방식으로 북한에 정유 제품을 제공하는 데 관여한 ‘라이트하우스 윈모어’와 ‘코티’, 북한산 석탄의 운반(제3국행)에 관여한 ‘탤런트 에이스’ 등이다.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 혐의다. 작년 12월 채택된 안보리 결의 2397호에 따른 조치였다.
2397호 제9항은 ‘북한이 기만적 해상 관행을 통해 석탄 및 기타 금지된 품목을 불법적으로 수출하고 선박 간 이전을 통해 불법적으로 유류를 획득하고 있는 것에 중대한 우려를 하고 주목한다’는 문안이 들어갔다.
더불어 안보리 결의에 의해 금지된 활동이나 품목의 이전에 연관돼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경우 회원국은 자국 항구내 모든 선박을 나포, 검색, 동결(억류)해야 한다. 아울러 영해 내의 선박에 대해서는 나포, 검색, 동결(억류)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결국 정부가 스카이 엔젤 등에 대해 북한산 석탄 운반 혐의를 두고 있다면 국내 입항때나 영해를 통과할 때 억류조치를 취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고민은 두 선박을 억류할만한 ‘합리적 근거’가 충분한지에 대한 판단에 있다.
정부 관계자는 20일 “스카이 엔젤호와 리치 글로리호의 경우 현재 정부가 억류하고 있는 라이트하우스 윈모어 등 3척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라이트하우스 윈모어와 코티의 경우 직접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에 정유 제품을 공급하는 것이 위성사진으로 포착됐고 탤런트 에이스는 북한에서 제3국으로 석탄을 직접 운반한 혐의가 파악됐다.
그에 반해 스카이 엔젤 등 2척은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에서 실어 한국으로 반입했다는 점에서 기존 억류된 3척에 비해 ‘범죄 입증’이 복잡한 실정이다. 즉 스카이 엔젤 측이 북한산 석탄임을 인지한 상황에서 한국으로 운반했다는 점에 대한 입증이 필요하다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또, 억류된 3척은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에 의해 입항 금지 선박으로 지정돼 있거나, 지정을 위한 논의가 이뤄졌던 선박이지만 스카이 엔젤과 리치 글로리는 ‘블랙리스트’에 등재되거나 등재 논의가 이뤄진 적이 없었다고 정부 당국자는 전했다.
이들 선박이 드나든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이 억류하지 않은 것도 비슷한 이유 때문으로 추정된다.
일단 북한산 석탄 운반에 관여됐다는 사실이 대대적으로 공개된 이상 정부는 앞으로 북한산 석탄의 수입업자에 대한 조사와 함께 두 선박에 대해 앞으로 억류 조치를 취할 것인지에 대한 입장을 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정부가 대북 제재 이행의 강도와 관련해 ‘기준’을 설정하는 일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민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