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오후 2시40분. 취임 한 달째인 일본 이와테(岩手)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시 도바 후토시 시장(46)은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취임 이후 정신없이 바쁜 업무로 가족을 돌보지 못한 도바 시장이 간신히 한숨을 돌리게 된 금요일 오후를 맞아 이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바비큐로 저녁을 먹자며 제안한 것이다.
아내 쿠미는 곧 어떻게 할지를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짧은 통화가 끊어졌다.
오후 2시46분. 규모 9의 엄청난 대지진이 이 도시를 포함해 일본의 동북부 해안선 100㎞를 뒤흔들었다. 전기가 나가고 전화가 두절됐으며 곧이어 13m 높이의 쓰나미가 방파제를 뚫고 도시 핵심부를 덮쳤다.
도바 시장과 지역 주민 수십명은 쓰나미를 피해 시내 중심가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인 시청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물은 4층 지붕 높이까지 넘실댔으며 트럭과 버스가 서로 부딪치며 나뒹굴고 부서진 집채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일본 대지진 한 달을 맞아 도바 시장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시청 지붕 위에서 내 집 쪽을 바라보니 모두 부서져 있었다. 숲에서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고 말했다.
도바 시장의 두 아들 타이가(12)와 카나토(10)는 다행히 언덕 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쓰나미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 쿠미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해안선 근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도바 시장은 “다 제쳐놓고 자동차에 뛰어올라 아내를 구하러 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장으로서 이 위급 상황에서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내에게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바 시장은 이후 쓰나미가 진정되고 재난수습을 하면서도 ‘아내가 살아나왔을 것’이라고 내내 기대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도시는 참혹했다. 자동차들은 모두 부서졌고 숲은 황폐해졌으며 철근들도 모두 휘어버렸다. 은행, 주유소, 상점, 병원 할 것 없이 모두 휩쓸려가버렸다.
이 도시 주민의 10분의 1가량인 2천3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대지진 발생 한달 뒤 일본은 현대사에 크게 기록된 이 대참사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어떻게 이 도시를 재건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도바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지역 도시들의 향후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1995년의 고베지진이나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도 일본은 빠른 속도로 피해복구를 해냈다. 하지만 지금 리쿠젠타카타를 비롯한 이 지역 해안도시들의 상황은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대지진 이전부터 젊은이들은 대부분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역에는 노인들만 남았고 산업도 쇠퇴해갔다.
시립학교 식당에서 임시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을 하는 도바 시장은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면서 “잔해 속에서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수 주 동안 도바 시장은 틈틈이 시체공시소나 혹시 다른 곳에 아내가 있는지를 살폈다.
그러던 중 지난 5일 시체공시소에서 연락이 와 아내 쿠미와 닮은 여성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바로 전날이 쿠미의 39세 생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 시체는 도바 시장의 집에서 600m나 벗어난 언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도바 시장은 이윽고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많이 훼손돼 있었지만 틀림없는 아내였다.
도바 시장은 시신 옆에 서서 아내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시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그는 이후 “이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를 되묻게 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취임 이후 정신없이 바쁜 업무로 가족을 돌보지 못한 도바 시장이 간신히 한숨을 돌리게 된 금요일 오후를 맞아 이날 저녁 아이들과 함께 바비큐로 저녁을 먹자며 제안한 것이다.
아내 쿠미는 곧 어떻게 할지를 이메일을 통해 알려주겠다고 말하고는 짧은 통화가 끊어졌다.
오후 2시46분. 규모 9의 엄청난 대지진이 이 도시를 포함해 일본의 동북부 해안선 100㎞를 뒤흔들었다. 전기가 나가고 전화가 두절됐으며 곧이어 13m 높이의 쓰나미가 방파제를 뚫고 도시 핵심부를 덮쳤다.
도바 시장과 지역 주민 수십명은 쓰나미를 피해 시내 중심가 철근콘크리트 4층 건물인 시청 지붕으로 기어올라갔다.
물은 4층 지붕 높이까지 넘실댔으며 트럭과 버스가 서로 부딪치며 나뒹굴고 부서진 집채들이 물 위를 둥둥 떠다녔다. 사람들은 살려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9일 일본 대지진 한 달을 맞아 도바 시장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시청 지붕 위에서 내 집 쪽을 바라보니 모두 부서져 있었다. 숲에서 나무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고 말했다.
도바 시장의 두 아들 타이가(12)와 카나토(10)는 다행히 언덕 위에 있는 학교에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이 쓰나미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내 쿠미는 늘 그랬던 것처럼 해안선 근처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도바 시장은 “다 제쳐놓고 자동차에 뛰어올라 아내를 구하러 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시장으로서 이 위급 상황에서 시민을 안전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아내에게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도바 시장은 이후 쓰나미가 진정되고 재난수습을 하면서도 ‘아내가 살아나왔을 것’이라고 내내 기대했다.
쓰나미가 휩쓸고 간 도시는 참혹했다. 자동차들은 모두 부서졌고 숲은 황폐해졌으며 철근들도 모두 휘어버렸다. 은행, 주유소, 상점, 병원 할 것 없이 모두 휩쓸려가버렸다.
이 도시 주민의 10분의 1가량인 2천300여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대지진 발생 한달 뒤 일본은 현대사에 크게 기록된 이 대참사에서 벗어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지도자들은 어떻게 이 도시를 재건할 수 있을지를 논의하고 있다.
도바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 지역 도시들의 향후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1995년의 고베지진이나 1923년의 관동대지진 때도 일본은 빠른 속도로 피해복구를 해냈다. 하지만 지금 리쿠젠타카타를 비롯한 이 지역 해안도시들의 상황은 당시와는 크게 다르다.
대지진 이전부터 젊은이들은 대부분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지역에는 노인들만 남았고 산업도 쇠퇴해갔다.
시립학교 식당에서 임시 사무실을 차려놓고 일을 하는 도바 시장은 “이런 상황에서 시장을 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라면서 “잔해 속에서 새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수 주 동안 도바 시장은 틈틈이 시체공시소나 혹시 다른 곳에 아내가 있는지를 살폈다.
그러던 중 지난 5일 시체공시소에서 연락이 와 아내 쿠미와 닮은 여성이 발견됐다고 전했다. 바로 전날이 쿠미의 39세 생일이 되는 날이었다. 이 시체는 도바 시장의 집에서 600m나 벗어난 언덕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던 도바 시장은 이윽고 시신을 확인하러 갔다. 많이 훼손돼 있었지만 틀림없는 아내였다.
도바 시장은 시신 옆에 서서 아내를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시장으로서의 책임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그는 이후 “이 일에 대해 생각할 때면 나는 어떤 종류의 사람일까를 되묻게 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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