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무죄” 판결전 헌재 “각하”…위헌심사 대상여부 해석 달라
유신헌법의 긴급조치가 헌법에 어긋나는지에 대해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 16일 유신시대 대통령 긴급조치 1호가 위헌이라며 상고한 오종상(69)씨에 대해 무죄 판결<서울신문 12월 17일 자 1·6면>을 내렸다. 반면 헌재는 이보다 9개월 앞서 긴급조치 9호에 대해 위헌심판 청구가 부적합하다며 각하 결정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20일 헌재에 따르면 제2지정재판부(재판장 목영준 재판관)는 지난 3월 긴급조치 9호를 위반한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다가 재심에서 면소(免訴·형사재판에서 소송절차를 끝냄) 선고를 받은 한모씨가 낸 헌법소원에서 각하 결정을 내렸다. 한씨는 긴급조치 선포를 규정한 구 헌법(유신헌법) 53조가 위헌이고, 위헌인 법령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은 만큼 재심에서 면소가 아닌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헌재는 “헌법 개별규정은 위헌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법 개정으로 인해 재심이 열렸더라도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면소를 선고할 수밖에 없다.”며 각하했다. 헌재의 이 같은 결정은 그러나 “법령의 폐지 이유가 헌법에 위반된 경우라면 피고인에게 면소를 할 수 없고, 무죄를 선고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 취지와는 다르다. 한씨의 법률 대리인이었던 조영선(법무법인 동화) 변호사는 “당시 청구 취지 중에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이라는 내용도 있었지만, 헌재가 이 부분을 판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헌재는 또 긴급조치 1·2·9호가 위헌이라는 청구가 제기됐지만,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 때문에 대법원이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지 않고 선수를 쳐 위헌 판결을 내렸다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한편 헌재는 대법원 판결 이후 계속 곤혹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재 관계자는 “전원합의체가 아닌 지정재판부 결정은 헌재의 공식적인 입장이라 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 판결이 과거사를 정리하고 반성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헌재 위헌 결정과는 달리 피해자를 현실적으로 구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전원합의체 판결은 긴급조치의 경우 대법원이 위헌 여부를 심사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 헌재를 배제한 것은 아니다.”라며 두 사법기관 간의 갈등으로 비치는 것을 경계했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2010-12-21 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