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전력관리 난맥상
‘9·15 정전대란’으로 정부의 전력 관리 체계의 난맥상이 그대로 드러났다.조직은 위기대응과는 거리가 멀었고, 담당자들은 매너리즘에 빠져 위기를 짚어 내지 못했다. 감독해야 할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도 제 몫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또 이번 사태의 책임소재를 놓고 네 탓 공방까지 일고 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 전력공급소 등의 책임라인 문책은 물론 전력 공급 시스템의 개편도 절실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6일 지식경제부와 관련 기관에 따르면 지난 15일 전력거래소는 전력수급 상황을 안이하게 대처하다 결국 ‘순환 단전’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순환 단전 관련 규정을 하나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거래소는 이날 오전 11시쯤부터 전력 수급의 이상 징후를 느끼기 시작했다. 거래소의 예상 최고 전력 사용량인 6400만㎾를 넘어선 것이다. 담당자들은 시간 단위로 증가하는 전력 사용량을 보고도 ‘국가전력 대란’의 파고를 감지하지 못했다.
또 에너지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최중경 지경부 장관은 순환 단전 조치가 이뤄진 지 1시간이 지난 오후 4시쯤 보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지는 등 사상 초유의 정전 대란에 대한 보고 시스템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청와대에도 사전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
●거래소, 경보발령 절차 어겨
전력거래소가 한두 시간만이라도 일찍 사태를 파악, TV와 인터넷,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등으로 국민에게 미리 전력 수급의 심각성을 알리고 순환 단전을 예고했더라면 전국을 혼란에 빠뜨리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지경부는 지난 15일 전력거래소가 전력 비상 상황 시 ‘경보발령 절차’에 따라 현재의 전력수급상황이 경보발령 단계라는 서면보고서를 작성한 뒤 지경부 장관과 경보발령권자(전력거래소 운영본부장)에게 보고하고 경보를 발령하게 돼 있지만 이를 어기고 먼저 순환단전을 하고 이후에 보고하는 ‘선(先) 조치-후(後) 보고’를 했다고 주장했다. 또 순환단전은 예비전력이 100만㎾ 미만이었을 때 가능한 조치였지만 좀 성급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16일 국회 지식경제위 전체회의에 출석한 염명천 전력거래소 이사장의 해명은 달랐다. 염 이사장은 “어제 오후 2시 30분쯤 예비전력이 급속하게 감소해 김도균 지경부 전력산업과장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이 급하게 돌아간다’는 보고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2시 50분쯤 다시 급속히 상황이 악화되자 다시 김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심각단계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알렸고, 김 과장이 ‘사정이 그러하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맞섰다.
●한전-거래소 재통합론 나와
임원 3명과 직원 298명 등 301명이 근무하는 전력거래소는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을 통해 탄생했다. 국내 모든 발전소에서 생산하는 전기가 전력거래소로 모여서 가격을 정하고, 발전소 통제 및 전력 수급 계획을 세우는 등의 총괄 업무를 한다. 따라서 사실상 모든 국내 전력수급계획이 전력거래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전력노조 관계자는 “이번 대규모 정전 사태는 실제 설비를 보유하고 전력을 공급하는 한전과 전력 수급 계획 등을 세우는 전력거래소의 업무가 분산돼 빚어진 측면도 있다.”면서 “정치적 논리로 2001년 8개 조직으로 분리된 전력산업을 다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근대 에너지경제연구원 박사도 “국가의 중요한 기간산업 중 하나인 전력산업이 분야별로 흩어져 있다 보니 비상시에 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상호협조 등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면서 “특히 한전의 송배전과 거래소의 급전소 기능 등을 합치는 등 전력 기관 간 중복 기능은 하루빨리 통폐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2011-09-17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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