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그룹만 공유 ‘족보’ 학점경쟁이 빚은 ‘족쇄’

특정그룹만 공유 ‘족보’ 학점경쟁이 빚은 ‘족쇄’

입력 2012-03-17 00:00
수정 2012-03-1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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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학기 중에 치르는 각종 시험의 기출문제와 정답을 모아놓은 ‘족보’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한 대학 동아리가 족보를 회원들끼리만 공유하는 것을 두고 “공정한 경쟁을 해친다.”는 의견과 “정보 수집 노력의 결과”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는 것. 대학생들 사이에서 학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나타난 진풍경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경제관과 인문관 건물 곳곳에 16일 A4 용지 크기의 자보 수십장이 나붙었다. 경제학부 내 경제·금융 동아리인 D학회가 경제학부 수업의 기출 시험문제를 모아놓은 ‘족보’를 회원들끼리만 공유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자신을 경제학부 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족보는 시험에 영향력 있는 재화”라면서 “D학회가 족보를 독점해 공정한 경쟁을 해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엇갈리고 있다. 경제학부 2학년 서모(21·여)씨는 “족보뿐만 아니라 각종 공부 자료를 아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것이 큰 문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인맥을 통해 자료를 구하는 것도 개인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반면 조모(20)씨는 “특정 그룹 안에서 조직적으로 시험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면서 “족보를 얻기 위해 학회에 가입하려는 학생들도 없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결국 그 학회에도 좋은 일만은 아니지 않겠느냐.”고 지적했다.

D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노모(22)씨는 “아직 공식적인 입장 정리가 안 됐다.”면서 “문제를 제기한 학생들을 따로 만나 대화를 해보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논란이 선후배 간에 족보를 물려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과거와 크게 달라진 지금의 대학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2년에 대학을 졸업한 박현수(36)씨는 “90년대에는 시험을 앞두고 족보를 돌려보는 것이 일상사였고,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고 특정 그룹이 족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며 독점하지도 않았다.”면서 “요즘 대학생들이 ‘스펙’ 경쟁에 내몰리면서 학점에 예민해진 탓”이라고 말했다. 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족보가 학생들 사이에서 여전히 효용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 게 문제”라면서 “교수들이 창의적인 교육과 평가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주입식 교육을 되풀이하는 데서 빚어진 촌극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진호기자 sayho@seoul.co.kr

2012-03-17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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