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규탄 ‘포고천하문’ 초고 발견…유림들 관여 입증

일제 규탄 ‘포고천하문’ 초고 발견…유림들 관여 입증

입력 2014-02-27 00:00
수정 2014-02-27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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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은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듬해인 1896년 일제를 규탄하기 위해 곽종석(1846~1919) 선생 등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포고천하문(布告天下文)’의 초고(초벌로 쓴 원고)를 발견했다고 27일 밝혔다.

포고천하문은 고종의 아관파천 등이 모두 일본의 만행 때문이라고 규탄하면서 만국의 평화와 세계 질서를 위해서는 이러한 일본의 행동이 각국으로부터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조선 왕조는 이를 토대로 작성한 최종본을 미국, 영국, 러시아 등 주한 각국 공사관에 발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포고천하문은 독립기념관에 이미 한 부가 소장되어 있고 진흥원 내에도 또다른 판본이 있지만 이번에 발견된 것은 이 보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됐다.

이 자료는 한말 유학자였던 홍와(弘窩) 이두훈(1856~1918)선생의 종손인 이진환 전 고령군수가 소장하고 있다가 지난해 말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한 것이다. 홍와 선생은 면우 곽종석 선생뿐만아니라 대계(大溪) 이승희(1847~1916), 교우(膠宇) 윤주하(1846~1906), 회당(晦堂) 장석영(1851~1926), 심산(心山) 김창숙(1879~1962) 등 유림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한 인물이다. 선생은 포고천하문 작성에 참여한 뒤에는 고향인 경북 고령으로 귀향, 내산(乃山) 서당을 열고 후진 양성에 전념했고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에는 배일 언론투쟁에도 참여했다.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기획홍보실장은 “기존 포고천하문은 면우 선생이 혼자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있지만 이 자료로 볼 때 홍와 선생 외에도 여러 유림이 함께 초안 작성에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이 전 군수는 이들 자료 외에도 국채보상운동이 대도시권 외에 고령 등 시골 지역에서도 체계적·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입증하는 자료 1만여점도 국학진흥원에 함께 기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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