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같은 삶 님만 있다면…

전쟁 같은 삶 님만 있다면…

입력 2014-12-17 00:00
수정 2014-12-17 0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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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뇌병변장애인 김탄진·장애경 부부가 사는 법

지난 15일 오전 9시쯤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 뇌병변장애 1급인 김탄진(46)·장애경(45·여) 부부는 내복 차림으로 각자 활동보조인을 기다렸다. 그들이 오기 전에는 씻고 옷을 갈아입을 수도, 밥을 먹을 수도 없다. 오전 9시 30분 탄진씨의 보조인 양현우(48)씨와 애경씨의 보조인 김모(45·여)씨가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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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인 장애경·김탄진 부부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자택에서 얼굴을 맞댄 채 즐겁게 웃고 있다.
뇌병변장애 1급 장애인인 장애경·김탄진 부부가 서울 노원구 월계동 자택에서 얼굴을 맞댄 채 즐겁게 웃고 있다.
탄진씨는 애경씨보다 몸이 불편하다. 혼자 화장실을 갈 수도, 젓가락질을 할 수도 없다. 그에 비해 애경씨는 말도 잘하고 스스로 음식을 먹을 수도 있다. 양씨가 탄진씨를 씻기는 동안 애경씨의 화장은 김씨의 몫. 쉴 새 없이 몸을 떠는 장애가 있지만 김씨는 능숙하게 립스틱까지 발랐다.

아침을 먹고 치우니 어느새 낮 12시. 애경씨는 먼저 장애인콜택시를 타고 출발했고 탄진씨는 평소처럼 보치아(장애인 스포츠의 일종)를 하기 위해 노원구의 서울시립뇌성마비복지관으로 향했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30분이 걸려 도착한 복지관에선 이날부터 도색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헛걸음을 한 그는 곧바로 종로구에 있는 노들장애인야간학교(노들야학)로 향했다.

복지관이 있는 1호선 녹천역에서 야학이 있는 4호선 혜화역까지는 지하철로 30분. 하지만 탄진씨에겐 1시간 30분은 족히 걸린다. 유동인구가 많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갈아타면서 양씨는 연신 행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엘리베이터도 5번을 탔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 탄진씨는 담배 한 대를 꺼내 물더니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의 한 대목) 어때요, 꼭 오늘 날씨 같죠?”라며 활짝 웃었다.

오후 5시 노들야학 한소리반의 국어수업이 시작했다. 김나리(가명·여) 강사가 한 단어 한 단어 또박또박 글을 읽기 시작했다. 한소리반의 ‘우등생’ 탄진씨는 소설 낭독이 끝나자 “김첨지는… 아내를… 좋아해요!”라고 목에 힘주어 말했다. 박수갈채가 나왔다.

잠시 뒤 저녁 시간. 탄진씨는 다른 반에서 공부하던 ‘반쪽’을 찾아갔다. 양씨가 능숙한 솜씨로 고개를 뒤로 젖힌 탄진씨의 입에 음식을 넣었다. 양씨는 “활동보조인 일도 서로 마음이 맞지 않으면 오래가기 어렵다”면서 “가끔 쓸데없는 고집만 피우지 않으면 힘들지 않다”고 말하며 웃었다. 오전 9시부터 꼬박 12시간을 함께하는 그들은 또 하나의 가족이다.

수업이 끝나자 두 활동보조인은 발을 동동 굴렀다. 궂은 날씨 탓에 장애인콜택시를 예약했지만 “대기인원 45명에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알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 결국 눈길을 헤치며 버스를 타러 갔다. 100번 노선에는 저상버스가 늘었지만 휠체어 두 대가 동시에 타기는 힘들었다.

장애인시설에서 처음 만난 둘은 가족의 반대를 딛고 2009년 결혼했다. 애경씨 부모는 몸도 더 불편하고 가족도 없는 탄진씨와의 결혼을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애경씨는 “평생 그의 손이 돼 주겠다”는 각오로 시설을 나왔다. 탄진씨는 그때부터 야학을 다녔다. 2012년 검정고시를 통과했고 내년에 고려사이버대에 입학한다. 그의 꿈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해 장애인센터를 만들어 다른 장애인을 돕는 것.

궂은 겨울날 장애인 이동 인프라가 열악한 서울에서 몇 차례씩 전쟁을 치르듯 일상을 사는 게 힘들지 않은지 물었다. 애경씨는 “시설을 나온 뒤 주어진 삶만을 강요받던 처지에서 벗어나 스스로 삶을 개척하기로 마음먹었다. 우리가 생각해도 끈질기게 야학을 다니고 있다”며 웃었다.

글 사진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2014-12-17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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