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無’ 구제역 약 묵인한 공무원 32명 처벌
올해 초 전국으로 확산된 구제역도 결국 ‘인재’(人災)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구제역 백신 공급과 수입 과정에서 나타난 무사 안일주의와 업무 태만에 빠진 공무원뿐 아니라 더 좋은 백신이 있음에도 기존 ‘물백신’을 고집한 검역본부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는다.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3월 2일부터 4월 10일까지 감사를 벌인 결과 2011년부터 구제역 백신 선정과 공급체계, 수입선 다변화, 예찰, 과태료 부과 등에서 부적절한 사례가 발견됐다고 18일 밝혔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중앙징계위원회에 농림축산검역본부와 농식품부 관계자 5명(중징계 1명, 경징계 4명)에 대한 징계 처분을 요청할 예정이다. 중징계 대상자인 주이석 검역본부장은 직위해제 이후 징계위에 넘겨진다. 구제역 백신 관계자 27명에게는 경고(15명)와 주의(12명) 처분이 내려진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물백신 사태를 야기한 장본인인 농식품부가 스스로 잘못을 진단하고 제재 수위를 정한 ‘셀프 감사’여서 객관적인 제재와 재발 방지 등을 위해서는 감사원 차원의 제대로 된 감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농식품부 감사 결과에 따르면 농식품부와 검역본부는 기존 물백신만을 고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역본부는 지난해 9월 구제역 O형 백신(O1-Manisa)과 구제역 바이러스 간 백신 매칭률(0.3 미만)이 매우 낮다는 ‘구제역세계표준연구소’의 보고서를 받았음에도 농식품부에 이를 보고하지 않았다. 또 O형 백신보다 매칭률이 높은 백신이 있는데도 새로운 백신 도입 여부를 검토하지 않았다. 구제역 백신 구입비는 연간 350억~400억원 수준이다.
2011년부터 양돈농가로부터 백신 접종에 따른 이상육 발생과 관련한 민원도 꾸준히 제기됐다. 농식품부와 검역본부는 이에 대해 귀를 닫고 백신 부작용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구제역 백신에 대한 동물용의약품 출하 신청 때 검역본부 고시에 따라 국내 제조사는 자체적으로 안전시험을 하고 그 결과를 검역본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국내 백신 제조사 5곳은 자체 검사 없이 백신을 수입해 온 외국업체의 시험성적서를 제출했고 검역본부는 이를 용인했다. 구제역 백신을 독점적으로 수입해 온 ㈜SVC에 대한 농식품부와 검역본부의 관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구제역 예방 접종을 하지 않은 농가에 대한 과태료 부과도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졌다. 항체 형성률로만 접종 유무를 판단하다 보면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음에도 다른 대안을 검토하지 않았다. 여기에 항체 형성률 기준도 수시로 바꿔 혼란을 불러왔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번 구제역 방역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바탕으로 가축질병 방역체계 개선 방안을 마련해 다음달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2015-06-19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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