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희(83) 할머니는 12세 어린 나이에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7개월간 고초를 겪었고, 이후 한평생을 ‘성폭력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故 김연희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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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김연희 할머니
결혼조차 하지 않은 채 무너진 인생을 홀로 추스러 온 김 할머니는 지난 24일 경기 용인의 한 요양병원에서 한 많은 세상과 작별했다. 올 1월 황선순(89)·박위남(93) 할머니, 4월 이효순(90) 할머니, 이달 11일 김달선(90)·김외한(81) 할머니에 이어 올 들어 6번째의 위안부 피해자 별세다.
●수요집회서 “당시 놀러가는 줄 알았지”
25일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영등포구 신화병원 장례식장은 평생 혼자였던 고인의 삶처럼 어둡고 쓸쓸했다. 김 할머니의 유일한 피붙이로, 평생 의지했던 여동생만 휑한 빈소를 지키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김 할머니는 1932년 대구에서 태어나 다섯 살 때 상경했다. 국민학교 5학년 때 다른 학생들과 함께 일본인 교장의 농간으로 일본에 보내졌다. 일본 도야마 현에 있는 항공기 부속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9개월을 일하다 아오모리 현의 군 위안소에 끌려갔다. 김 할머니는 과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나와 “당시 우리는 놀러가는 줄로만 알았다”며 어린이까지 닥치는 대로 유린했던 일제의 만행을 고발했다. 김 할머니는 해방을 맞아 귀국했지만 어린 나이에 위안소에서 겪은 성폭력 후유증으로 평생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대외 활동을 꺼렸던 김 할머니는 서울에서 여동생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 6~7년 전부터 요양병원을 전전했다.
●평생 정신과 치료… 결혼 않고 독신 생활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할머니들께서 임종을 앞두고 그런 말씀들을 하세요. ‘난 죽더라도 죽은 게 아니다. 일본은 더 독해질 테지만 나는 죽어서도 맞서 싸우겠다’는 말에 안타깝고 울분이 치솟습니다.” 이날 빈소를 찾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관계자는 끝내 눈물을 참지 못했다. 이제 정부에 등록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38명 중 생존자는 49명으로 줄었다. 김 할머니의 장례식은 26일 오전 6시 30분에 치러진다.
우리 국민의 평균 수면 시간이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줄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의 비율도 크게 늘었다. 반면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의 이용자가 늘면서 미디어 이용 시간은 급증했다. 결국 SNS와 OTT를 때문에 평균수면시간도 줄었다는 분석이다. 당신은 하루에 SNS와 OTT에 얼마나 시간을 소비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