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업법 개정안 국회서 멈춰 ‘규제 공백’…“사채 자제·등록 확인”
경마 고객에게 차량을 담보로 급전을 빌려주고 무려 연이율 500%가 넘는 불법 이자를 챙긴 대부업체가 경찰에 적발됐다.하지만 ‘살인 금리’를 규제하고 금융약자를 보호할 대부업법 개정안이 지난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당분간 이 같은 불법을 단속할 근거가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22일 서울 동작경찰서에 따르면 경마꾼 이모(60)씨는 작년 9월 주말에 경기 과천시 과천경마장에서 일확천금을 꿈꾸며 베팅했지만 가진 돈을 모두 날렸다.
경마장을 떠나면서도 이씨의 뇌리에선 ‘한 판만 더 하면 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주차장까지 터덜터덜 걸어나온 이씨는 ‘개인·법인·리스 차량 담보대출’이라고 적힌 A대부업체의 현수막을 발견했다.
이씨는 3개월 전에도 이 현수막을 보고서 해당 업체의 돈을 빌린 적이 있었다.
자신의 에쿠스 차를 담보로 원금의 10%와 주차비 5만원을 떼고 열흘 안에 갚는 조건으로 빌렸지만 돈을 모두 잃고 어렵사리 갚았던 터였다.
하지만 이날만은 꼭 돈을 딸 것 같았던 이씨는 A사에 또 연락했다. 같은 조건으로 200만원을 빌려 175만원을 손에 쥐고는 경마장으로 돌아갔다.
이씨의 기대는 허사였다.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빌린 돈으로 산 마권은 순식간에 휴짓조각으로 변했다.
A업체는 이씨가 돈을 갚지 못하자 열흘 단위로 돈을 새로 빌리는 형식으로 이자를 부풀렸다.
대부업법상 연이자율 상한선은 34.9%였지만, A업체는 무려 521%를 이자로 부과한 셈이다.
작년 2월 서울 노원구에 대부업체로 등록한 A업체는 평일이 아닌 주말에 과천경마장에 직원이 상주하며 급전이 필요한 경마 고객을 노렸다.
경마장 이용객 171명은 이씨와 같은 조건으로 8억 1천500만원을 빌렸지만 대부분 제때 갚지 못해 이자가 눈덩이처럼 쌓였다.
일부 경마꾼은 담보로 제공한 포르셰나 벤츠 등 고급 외제 차량을 찾으려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이자를 감내했다.
돈을 갚지 못한 이들은 담보 차량을 빼앗기기도 했다. A업체는 작년 말까지 ‘앉은뱅이 돈놀음’으로 1억원 상당을 챙겼다.
경찰은 A사 대표 조모(71)씨 등 3명을 대부업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문제는 해가 바뀌면서 A업체와 같이 법정 이자율보다 높은 이자를 매기는 악의적 행위를 당분간 처벌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최고금리를 34.9%로 제한한 대부업법은 작년 12월 31일 만료됐지만, 이를 다시 규정하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해 ‘규제 공백’이 생겼기 때문이다.
경찰 관계자는 “법률 통과 전까지는 가능하면 대부업체 이용을 자제하고 불가피하게 사채를 사용할 때는 등록 여부를 확인해 불법추심 등 피해를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