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건 미비·상정 안된 법안’이므로 심의·표결권 침해 없어
“헌법 실현기관인 국회에 대한 헌재 심사는 최대한 자제돼야”헌법재판소가 26일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요건을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국회 선진화법’(국회법)이 국회의원의 법안 표결·심의 권한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박한철(가운데) 헌법재판소장과 이정미(왼쪽), 김이수(오른쪽) 재판관 등이 26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 앉아 있다. 헌재는 ‘국회선진화법’이 국회의원의 표결권 등을 침해한다고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 각하 결정했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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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의원들은 지난해 1월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하면서 국회의장과 국회 기획재정위원장이 법률안에 대한 심사기간과 신속처리 대상안건 지정을 거부한 행위가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국회의장 등의 지정거부 행위의 근거가 된 국회법 85조 1항과 85조의2 1항 자체도 국회의원의 권한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국회법 해당 조항을 개정한 자체도 권한 침해라고 주장했지만 헌재는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헌재는 우선 국회의장과 기획재정위원장 등에게 심사기간이나 신속처리 안건으로 지정할 의무가 발생하지 않았으므로 의원들의 권한이 침해될 가능성 자체가 없다고 판단했다.
권한을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권한 침해 가능성 자체가 없으면 헌재는 각하 결정을 내리고 본격 심사에 들어가지 않는다.
헌재는 “청구인들의 법안 심의·표결권에 대한 침해 위험성은 해당안건이 본회의에 상정돼야 비로소 현실화되고 국회법에 따른 심사기간 지정 사유가 있더라도 국회의장은 직권상정 권한 등을 행사하지 않을 수 있다”며 “따라서 국회의장의 심사기간 지정 거부행위로 인해 청구인들의 심의·표결권이 직접 침해당할 가능성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재위원장의 신속처리 안건 지정거부도 “요건을 갖춘 신속처리 안건 지정동의가 소관 위원장에게 제출돼야 비로소 위원장이 지정 여부의 표결을 실시할 의무를 부담하게 된다”며 “이 사건은 이러한 요건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지정을 위한 표결실시 거부로 인해 청구인들의 표결권이 직접 침해당할 가능성이 없다”고 지적했다.
헌재는 법안 심사기간과 신속처리 지정 요건을 정한 국회법 조항도 국회의원 권한을 침해할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심지어 국회법 해당 조항이 위헌으로 판정되더라도 지정거부 행위가 국회의원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헌재는 “국회법 해당 조항이 다수결 원리 등에 반해 위헌이 되더라도 국회의장 등에게 법률안 심사기간 등 지정 의무가 곧바로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며 “따라서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는 지정 거부행위의 효력에 아무런 영향도 미칠 수 없다”고 했다.
이는 국회의 입법권을 최대한 존중하려는 취지로도 파악된다.
헌재는 “헌법 실현에 관한 1차적 형성권을 갖고 있는 국회와의 관계에서 헌법재판소가 갖는 기능적 한계에 비춰 보더라도 헌재가 근거규범도 아닌 입법 부작위(하지 않는 것)의 위헌 여부 심사까지 나아가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심사를 최대한 자제해 의사 절차에 관한 국회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국회 선진화법 조항 도입 자체가 국회의원들의 표결·심의권을 침해했다는 주장도 부적법하다고 헌재는 판정했다.
헌재는 “법률의 제·개정 행위를 다투는 권한쟁의 심판의 경우 오히려 국회가 피청구인”이라며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장과 상임위원장에게 제기한 심판은 청구 대상이 아닌 자를 대상으로 한 청구이므로 부적법하다”고 했다.
국회의장의 국회 선진화법 조항 가결 선포가 국회의원 권한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인정되지 않았다.
헌재는 “가결 선포 행위가 있었던 2012년 5월 2일부터 180일이 경과한 후에 이뤄진 심판청구는 청구기간을 지났다”고 지적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