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독립군 도운 보부상 막으려 만든 규칙이 연원”변호사 단체는 우려 목소리
전직 경찰관이 민간조사업(사설탐정) 제도 도입을 막는 현행 법률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사설탐정제 도입을 추진하는 ‘전·현직 경찰관 공인탐정연구회’의 정수상 회장은 지난 달 13일 ‘신용정보의 이용·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일부 조항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달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청구서를 냈다고 24일 밝혔다.
정 회장은 경기 일산경찰서장과 고양경찰서장 등을 지내고 최근 정년퇴임 한뒤 사설탐정제 도입에 힘쓰고 있다.
신용정보법 제40조 5호는 신용정보회사가 정보원·탐정 등 명칭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하고 있고, 같은 조 4호는 특정인의 소재·연락처·사생활을 조사해서도 안 된다고 규정한다. 사실상 사설탐정업을 금지하는 셈이다.
정 회장은 청구이유서에서 신용정보법의 해당 조항이 직업 선택의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과잉금지 원칙 등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들 조항은 역사적으로 독립군을 돕는 보부상(봇짐장수·등짐장수)의 활동을 막으려고 일제가 만든 법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이 정 회장의 주장이다.
보부상들이 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독립군에 조선의 동향을 전하고 군자금·군수물자를 댄다는 첩보가 입수되자 이를 와해시키려고 일제가 조선총독부령으로 1911년 만든 신용고지업 취체(단속) 규칙이 그 연원이라는 것이다.
그는 일제의 신용고지업 취체 규칙이 해방 이후에도 흥신업단속법(1961), 신용조사업법(1977), 신용정보법(1995) 등을 거쳐 현재까지 살아남아 탐정업법을 가로막는 독소조항이 됐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가 탐정업을 허용하고 있지만, 한국만 유독 이를 금지해 국민 알 권리와 행복추구권이 침해된다고도 정 회장은 주장했다.
최근 실종자·미아·치매 노인이 늘어나고 흥신업 등 공권력 사각지대에서 개인정보 침해가 늘어나 합법적인 탐정이 도입돼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게 정 회장의 판단이다.
정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3월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사설탐정 등 도입 검토를 지시했으나 신용정보법 등이 장애가 돼 관련 부처와 국회 대응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헌법소원을 내게 됐다”며 “위헌 결정이 나면 새로운 직업인 탐정업이 사실상 허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재는 이달 5일 정 회장의 헌법소원심판청구를 재판부 심판에 회부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민간조사제도 어떻게 도입해야 하나’라는 소책자를 내 민간조사업이 도입되면 1조원 이상의 경제효과가 기대된다는 연구결과를 소개하는 등 사설탐정제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경찰 내부에서는 20대 국회에 경찰 출신 의원이 8명으로 늘어 제도 도입이 수월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를 비롯한 변호사 단체는 공권력이 아닌 민간에 사건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위험하며 오히려 사생활 침해가 심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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