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시행 첫날] “내가 잠재적 범죄자라도 되나” 서약서 강요에 반발

[김영란법 시행 첫날] “내가 잠재적 범죄자라도 되나” 서약서 강요에 반발

이성원 기자
입력 2016-09-28 23:08
수정 2016-09-29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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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인권침해 소지 있어” 권익위 “문제 되는 부분 수정”

“김영란법의 취지야 당연히 공감합니다. 이 법이 없을 때도 교사로서 청렴의무 교육을 받았고요. 그런데 서약서에 서명하라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요? 반성문에 서명하라는 것 같아 불쾌합니다.”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 김모(29·여)씨는 28일 학교로부터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 서약서’에 사인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 법에 대한 내용을 철저히 숙지하고 준수하겠으며, 위반 시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약서에는 ‘나는 어떠한 부정청탁도 받지 않겠다’는 내용의 다섯 가지 서약이 적혀 있고, 맨 밑에는 자필로 서명할 수 있도록 직위와 서명을 하는 공간이 비어 있었다. 김씨는 “서약서를 강요하는 건 대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것 아니냐”면서 “요즘 학생들에게도 반성문이나 서약서를 강요하지 않는데, 국가가 나서서 서약서를 강요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란법에 명시된 서약서 의무조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국가가 나서 개인에게 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은 헌법에 명시된 ‘양심의 자유’에 위배되며 인권침해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영란법 시행령 제19조에 보면 공공기관장은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 금지법을 정기적으로 교육해야 하며 이를 지킬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도록 명시돼 있다.

헌법학자들은 서약서 강요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재판소가 2002년 수형자의 가석방 시 준법서약서 작성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린 만큼 서약서 강요 자체가 위헌에 해당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서약서를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하느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인권침해적 요소는 분명해 이 의무조항을 없애는 게 적절해 보인다”고 말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인권침해 요소를 고려하지 못했는데 향후 문제가 되는 부분은 검토해 수정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2016-09-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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