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누워 반대한 재활병원… 장애아 자립의지에 마음 돌렸죠”

“드러누워 반대한 재활병원… 장애아 자립의지에 마음 돌렸죠”

최훈진 기자
입력 2017-10-01 21:36
수정 2017-10-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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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메 넥슨어린이재활병원’ 홍보대사 된 최은하씨가 말하는 상생의 기쁨

“박홍섭 구청장님한테 ‘세금 내놔라’라고 따지며 바닥에 드러눕다시피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영문도 모른 채 찾아간 곳에서 겨우겨우 봉투에 양면테이프를 붙이며 땀흘리는 아이들 모습을 보고 마음이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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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 위치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앞에서 5년 전 병원 건립 반대에 앞장섰던 지역 주민 최은하(맨 오른쪽)씨가 박홍섭(오른쪽 두 번째) 마포구청장과 나란히 앉아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은 최씨와 함께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이진재씨, 왼쪽 두 번째는 임윤명 병원장.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북로에 위치한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앞에서 5년 전 병원 건립 반대에 앞장섰던 지역 주민 최은하(맨 오른쪽)씨가 박홍섭(오른쪽 두 번째) 마포구청장과 나란히 앉아 당시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맨 왼쪽은 최씨와 함께 반대 목소리를 냈던 이진재씨, 왼쪽 두 번째는 임윤명 병원장.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무릎꿇은 특수학교 엄마, 남일 아냐”

2011년 서울 마포구가 월드컵로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추진할 때 앞장서 반대했던 인근 주민 최은하(47)씨는 지난달 29일 병원 1층에서 가진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국내 첫 어린이 재활 전문 병원인 이곳은 뇌성마비·유전질환·발달장애 아동을 재활·치료하는 시설이다.

전업주부인 최씨는 얼마 전 ‘강서지역 공립 특수학교 신설 주민토론회’에서 주민들 반대에 무릎 꿇은 장애 학생 어머니의 모습을 뉴스로 보고 “5년 전 내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털어놨다. 당시 왜 반대했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집값도 그렇지만 아파트 단지 내 초등학교와 병원 부지가 인접해 아이들이 (장애)아이들의 행동을 보고 따라하며 배울까 봐 겁이 났다”고 답했다. 당시 상암월드컵파크 10단지 주민회장을 맡고 있던 최씨는 9단지 회장 이진재(48)씨와 함께 병원 건립 반대 운동을 주도했다. 구 홈페이지에 매일 같은 시간 30건의 민원 글을 올렸을 만큼 열성적이었다.

그토록 강경했던 최씨의 마음이 바뀐 것은 반대 운동을 한 지 1년여가 지난 어느 날이었다. 최씨는 “한 군데만 같이 가 달라”는 김현기 마포구 어르신복지장애인과장의 간청에 이끌려 대흥동에 있는 ‘우리마포직업재활센터’를 찾았다. 장애인들이 직업 훈련을 겸해 일을 하는 곳이다.

당시를 회상하는 최씨의 목소리가 잠겼다. “처음 본 광경이었어요. 고등학생쯤 돼 보이는 아이들이 1분이 넘게 끙끙대며 풀칠해 봉투 한 개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해 버는 돈이 월 10만원인데, 그 아이들의 부모는 아이들이 자립을 할 수 있게 돼 감사해한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같은 엄마로서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 말 못하고 집에 돌아와 후회를 했죠.”

그날을 기점으로 최씨는 변했다. 병원 건립 반대에 앞장섰던 최씨가 반대로 반대 주민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최씨는 “아픈 아이들이 조기에 치료를 받으면 커서 자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다른 주민들을 설득했다”고 밝혔다. 재단 측에서도 병원 전용면적의 30%를 도서관 등 주민 복지시설로 제공하고 일반인 환자에게도 병원을 개방하겠다며 주민들을 달랬다.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절대 반대 안 해”

이런 극적인 반전 끝에 지난해 4월 넥슨어린이재활병원이 드디어 개원했다. 이 병원은 지금 장애 아동만의 병원이 아니다. 병원 1층에 있는 소아과, 치과는 지금 최씨가 온 가족을 데리고 가는 단골 병원이다.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도서관, 수영장 등은 장애와 비장애의 장벽을 허물었다.

병원 측은 “처음 병원을 열었을 때 장애아가 유모차를 타고 들어오면 주민들 시야가 그쪽으로 이동했는데, 지금은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집값은 오히려 올랐다고 한다. 주민들이 염려했던 사고도 없었다. 최씨는 지금 병원이 주최하는 연주회와 전시회 등 각종 행사를 홍보하는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병원을 짓기 전으로 돌아간다면요? 절대 반대할 생각이 없습니다.” 병원 창문으로 들이치는 눈부신 가을햇살이 최씨의 환한 미소에 내려앉았다.

최훈진 기자 choigiza@seoul.co.kr
2017-10-02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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