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는 “화재 위험…영업장 비워라” 고시원장 “가난한 사람들 갈 데 없다”

건물주는 “화재 위험…영업장 비워라” 고시원장 “가난한 사람들 갈 데 없다”

이하영 기자
입력 2018-11-12 22:32
수정 2018-11-1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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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외면한 ‘이유 있는 불법 점유’… 종로 참사 불렀다

양측 수년째 갈등…책임 공방 ‘점입가경’
주거권 대책 마련 촉구 시위
주거권 대책 마련 촉구 시위 지난 9일 화재로 7명이 숨진 서울 종로구 관수동 국일고시원 앞에서 12일 전국세입자협회 회원들이 정부와 국회에 주거권을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를 둘러싼 ‘책임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화재 위험이 있으니 퇴거하라”며 소송을 낸 건물주와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쫓아내지 말라”며 버틴 고시원장 간의 ‘줄다리기’가 5년 넘게 이어져 온 것으로 드러났다. 양측의 갈등이 풀리지 않으면서 결국 가난한 고시원 세입자들만 화마에 목숨을 잃었다.

12일 서울중앙지법에 따르면 공동건물주인 하창화(78) 한국백신 회장과 여동생 하모(68)씨는 2013년 고시원 원장 구모(68)씨를 상대로 국일고시원 건물에 대한 명도 소송을 청구했다. 하 회장 남매는 “건물이 노후화돼 물이 새고 화재 위험이 있는 등 안전상·관리상 문제가 있어 조속한 시일 내에 건물 리모델링 공사를 시행해야 한다”면서 “2012년 10월 31일 임대차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즉시 건물 리모델링에 착공해야 하는데 원고는 건물을 명도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법원은 2013년 11월 조정조서를 통해 “2014년 11월 30일까지 건물을 명도하라”며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하 회장 측은 구씨에게 2014년 11월 7일 최고장을 보내 퇴거를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고시원은 2014년 12월 1일부터 현재까지 ‘불법 점유’ 상태다.

하지만 구씨는 법원의 합의 조정 이후에도 고시원을 포기하지 않았다. 구씨는 2015년 4월 서울시의 간이 스프링클러 지원사업에 지원해 6월 사업 대상으로 선정됐다. 화재 위험이 줄어들면 건물주가 내쫓을 명분이 약해질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건물을 리모델링한 뒤 팔려고 한 하 회장은 스프링클러 설치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게 건물주와 고시원 간 3년간의 ‘핑퐁 게임’이 지속되다 지난 9일 결국 7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고시원장 구씨는 사고 직후 “건물주가 스프링클러만 설치했어도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스프링클러 설치에 동의하지 않은 건물주에게 책임을 돌린 것이다. 이에 대해 하 회장은 이날 통화에서 “2007년부터 건물을 매각하려 했고, 명도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이어서 스프링클러 설치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항변했다. 구씨가 법원의 퇴거 명령을 이행하지 않아 참사가 났음을 시사한 것이다. 이주민 서울경찰청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건물주가 책임이 있다면 부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국일고시원 건물의 땅 면적은 78평(257.4㎡), 2000년 매입 가격은 24억원, 현재 시가는 70억 2000만원으로 확인됐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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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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