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초유 전직 대법관 구속 불발사유는…“공모관계 성립 의문”

헌정 초유 전직 대법관 구속 불발사유는…“공모관계 성립 의문”

김태이 기자
입력 2018-12-07 09:55
수정 2018-12-0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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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증거 이미 수집됐고 인멸 우려 적어…구속 사유·필요성 없다”

법원이 7일 박병대(61)·고영한(63)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전직 대법관 2명에 대한 헌정 초유의 구속수사 시도는 결국 불발했다.
구속 면한 전직 대법관들
구속 면한 전직 대법관들 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은 고영한(왼쪽), 박병대 전 대법관이 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와 차량을 타고 귀가하고 있다. 검찰은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전직 대법관들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2018.12.7
뉴스1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함께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을 공모했다는 이들의 혐의사실을 두고 검찰의 소명이 부족했다는 판단이 영장을 기각한 공통된 사유로 꼽혔다.

박 전 대법관의 영장심사는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고 전 대법관의 심사는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각각 맡았다.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 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된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명 부장판사는 고 전 대법관의 영장 기각사유 대해 “피의자의 관여 정도 및 행태,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 현재까지의 수사 진행 경과 등에 비추어 현 단계에서 피의자에 대한 구속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두 판사의 표현이 약간씩 다르지만 ▲ 범죄혐의의 소명 ▲ 증거인멸의 우려 ▲ 도망의 염려 등 구속수사를 받을 만한 요건을 찾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검찰은 이번 사건의 공범이자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해서는 구속영장을 발부한 반면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상식에 어긋난다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검찰이 두 전직 대법관과 임 전 차장의 공모관계를 소명했다고 보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실제로 징용소송 개입 등 일련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두고 임 전 차장은 ‘윗선’의 부당한 지시를 어쩔 수 없이 따랐다는 취지의 진술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검찰이 이미 넉넉한 증거자료를 수집했는데도 두 전직 대법관의 공모관계가 분명하게 드러나지는 않았다고 봤다. 임 부장판사와 명 부장판사는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된 점’, ‘피의자의 주거지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루어진 점’ 등을 영장기각 사유로 들었다.

수사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으므로 두 전직 대법관이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없는데, 범죄 소명은 부족한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영장기각 사유는 법원이 지난 3월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영장을 기각할 때 제시한 사유와 비슷하다.

김 전 장관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에 대해 법원은 “이미 진행된 수사와 수집된 증거의 내용을 볼 때 피의자가 도망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염려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당시에도 검찰은 하급자들이 구속된 상황에서 ‘윗선’의 영장이 기각된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놨다.

박 전 대법관의 경우 사법연수원 16기수 후배인 임 부장판사에게 “노모가 기다린다”며 읍소한 전략이 통했다는 분석도 있다.

박 전 대법관은 전날 영장실질심사에서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서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의 고사성어 기문이망(倚門而望)을 언급하며 “나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는 판사님께 달렸다”고 호소한 것으로 전해졌다.

변호인 역시 “93세 노모가 있으니 구속을 면하게 해달라”고 변론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박 전 대법관의 ‘가족관계’를 영장 기각 사유로 제시했다.

이날 법원이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공정성 논란이 다시 제기될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른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냐는 것이다.

논란이 고조된다면 이번 사건을 심리할 특별재판부를 별도로 구성하는 방안을 추진해 온 여권이 특별재판부 설립 추진에 고삐를 죌 가능성도 크다.

법원은 영장을 기각한 판사가 법과 원칙, 양심에 따라 결정을 내렸을 뿐 다른 요인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영장심사를 맡았던 두 부장판사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 9~10월 차례로 영장전담 재판부에 합류했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 2월부터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 단독 재판부를 맡아왔다. 연수원 수료 뒤 광주지법과 수원지법, 대전지법, 인천지법 등을 거치며 오랜 실무 경험을 쌓았다.

임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검사 출신인 명 부장판사는 지난 9월 고 전 대법관의 자택과 박 전 대법관의 자택 등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도 했다.

이런 이력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두 전직 대법관 중 적어도 한 명에게는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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