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조작 피해자 강광보씨 “진실을 숨길 순 없다”

간첩조작 피해자 강광보씨 “진실을 숨길 순 없다”

강동삼 기자
강동삼 기자
입력 2022-04-21 16:16
수정 2022-04-21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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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로 재심 끝에 2017년 무죄판결을 받은 강광보씨가 21일 자신이 운영하는 국가폭력 기억공간 ‘수상한 집’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로 재심 끝에 2017년 무죄판결을 받은 강광보씨가 21일 자신이 운영하는 국가폭력 기억공간 ‘수상한 집’에서 재심 무죄판결을 받은 사람들의 명단을 살펴보고 있다.
제주도가 과거 군사정권이 자행했던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꾸린 피해자 지원위원회가 21일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지난해 7월 전국 최초로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들의 인권 증진과 지원을 위한 조례를 제정했는데, 이 조례에 따라 지원위원회가 탄생한 것이다. 제주에는 현재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37명이 살고 있다.

제주시 도련동에 국가폭력 기억공간인 ‘수상한 집’을 만들어 운영하는 강광보(81)씨도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이다. 농가주택 위에 현대식 건물을 올려 지은 그야말로 ‘수상한 집’에서 강씨가 간첩으로 둔갑한 사연을 들어 봤다.

그는 가난 때문에 21세에 일본으로 밀항했다. 거기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살았지만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18년 만인 1979년 가족들과 고국 땅을 밟았다. 추방되기 전 영사관에 가서 친척 중에 조총련계도 있다고 자진 신고했다. 비극은 거기서 시작됐다. 제주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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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가 유리창에 새긴 ‘진실을 숨길 순 없고 정의를 이길 순 없다’라는 글귀.
강씨가 유리창에 새긴 ‘진실을 숨길 순 없고 정의를 이길 순 없다’라는 글귀.
처음에는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지만, 6년 뒤인 1985년 다시 중정에서 불렀다. “일본에서 살았다는 자술서를 써 달라길래 써 줬는데, 40일간 고문을 하더군요. 고문하던 사람들이 여기는 ‘인간 도살장’이라며 협박했어요.” 잠 안 재우기, 전기고문은 물론 ‘다름이’라고 불리는 야구방망이 같은 몽둥이로 두들겨 맞았다. 결국 그는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조총련의 지시에 의해 간첩으로 귀국해 국가기밀을 수집해 보냈다’는 자술서를 쓰고 말았다.

이 자술서를 토대로 국가보안법 위반(간첩)으로 7년형을 선고받아 5년 4개월을 살고 1991년 출소했다. 가정은 이미 풍비박산 난 상태였다. 2013년 재심을 신청해 2017년 무죄판결을 받았다.

“무죄를 받으면 만세를 부를 줄 알았는데, 그냥 멍하더군요. 지금도 경찰, 군인만 보면 놀라고 ‘보안’, ‘안보’란 글씨만 봐도 섬뜩합니다. 언젠가는 국가의 사과를 받고 싶어요.” 강씨는 ‘수상한 집’의 유리창에 이런 글귀를 새겨 넣었다. ‘진실을 숨길 순 없고 정의를 이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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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씨의 부모집이었던 시골농가 위에 현대식 건물을 올려 지은 ‘수상한 집’.
강씨의 부모집이었던 시골농가 위에 현대식 건물을 올려 지은 ‘수상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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