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과정서 고문… 증거 안 돼”
이른바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으로 몰려 억울하게 사형당하거나 옥살이를 한 당사자들이 34년 만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부장 김태업)는 29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고(故) 최을호씨와 징역 9년을 복역한 고 최낙전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김제 가족간첩단 사건은 1982년 전북 김제에서 농사를 짓던 최을호씨가 북한에 갔다온 뒤 조카인 낙전·낙교씨를 포섭해 간첩활동을 했다며 기소된 사건이다. 이들은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기술자’ 이근안과 수사관들에게 40여일 동안 고문당하고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넘겨져 수사를 받았다. 당시 공안검사는 정형근 전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낙교씨는 1982년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사망해 공소가 기각됐다. 이듬해 3월 1심 재판부는 을호씨에게 사형을, 낙전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항소와 상고는 모두 기각됐다. 1985년 10월 을호씨가 형장의 이슬이 됐고, 낙전씨는 9년을 복역하고 나온 뒤 보안관찰에 시달리다 석방 4개월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재판부는 당시 수사과정에서 고문과 가혹행위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고문으로 인해 작성된 경찰 진술조서와 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무죄를 선고하며 “국가가 범한 과오에 대해 용서를 구한다”고 덧붙였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2017-06-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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