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오히려 마음이 편해’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막내 김한수(18.서울장애인체육회)는 18일 2010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BC3 개인전 결승을 앞두고 어머니인 윤추자(50) 코치에게 속마음을 전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김한수는 평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컴퓨터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한다.
결승에서 김한수가 만난 상대는 대표팀 대선배인 정호원(24.속초장애인체육회)이었다.
정호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 2인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시작해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한 국내 1인자.
김한수는 ‘결승에 가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는데 이미 달성했다’면서 부담을 떨치면서도 ‘연습경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호원 형은 잘 안다’며 은근한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
결국 김한수는 이날 결승전에서 정호원을 6-4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보치아는 사지에 심한 장애가 있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로 흰색 표적구 쪽에 색깔이 있는 공을 던져 가장 가까이 던지면 이기는 경기다.
1994년부터 베이징 아태대회 이후 한 차례도 보치아 종합 1위를 빼앗긴 적이 없었던 한국은 올해도 우승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1∼4등급까지 모두 결승에 진출했으나 김한수와 정호원이 맞붙은 BC3을 제외하고는 태국과 중국에 져 은메달만 4개를 땄다.김한수는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유일한 금메달리스트로 남았다.
주몽학교 5학년 때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성현을 보고 보치아를 시작했고,지난해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정호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코치는 “평소 정호원과 연습경기에서는 한수의 승률이 30% 정도였다”면서 “세계 정상급의 선수이기 때문에 부담을 버렸고 ‘크게 지지만 말자’고 생각했다.아들에게는 ‘잘할 수 있다’는 말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호원이는 노련한 선수지만 점수가 기울면 누구나 긴장하게 마련”이라면서 “2엔드가 끝나고서 점수가 많이 벌어진 것을 보고 ‘우리가 이길 수 있겠구나’하고 확신했다.신이 도왔던 것 같다”며 웃었다.
코치와 선수이기 이전에 모자지간인 둘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윤 코치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만 한없이 반복했다.
윤 코치는 “아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주변 사람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매우 좋아했다”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니 그간 고생한 것을 다 보상받은 기분이다”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그는 “세계선수권대회보다 확실히 종합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다”면서 “집안일을 신경 안 쓰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준 가족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막내 김한수(18.서울장애인체육회)는 18일 2010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 BC3 개인전 결승을 앞두고 어머니인 윤추자(50) 코치에게 속마음을 전했다.
뇌성마비 장애인인 김한수는 평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나 컴퓨터를 이용해 세상과 소통한다.
결승에서 김한수가 만난 상대는 대표팀 대선배인 정호원(24.속초장애인체육회)이었다.
정호원은 2002년 부산 아시아-태평양 장애인경기대회 2인조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것을 시작해 올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한 국내 1인자.
김한수는 ‘결승에 가는 것이 처음의 목표였는데 이미 달성했다’면서 부담을 떨치면서도 ‘연습경기를 많이 해봤기 때문에 호원 형은 잘 안다’며 은근한 자신감도 갖고 있었다.
결국 김한수는 이날 결승전에서 정호원을 6-4로 물리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보치아는 사지에 심한 장애가 있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로 흰색 표적구 쪽에 색깔이 있는 공을 던져 가장 가까이 던지면 이기는 경기다.
1994년부터 베이징 아태대회 이후 한 차례도 보치아 종합 1위를 빼앗긴 적이 없었던 한국은 올해도 우승을 노렸지만 실패했다.
1∼4등급까지 모두 결승에 진출했으나 김한수와 정호원이 맞붙은 BC3을 제외하고는 태국과 중국에 져 은메달만 4개를 땄다.김한수는 한국 보치아 대표팀의 유일한 금메달리스트로 남았다.
주몽학교 5학년 때 2004년 아테네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박성현을 보고 보치아를 시작했고,지난해 처음 태극마크를 단 뒤 각종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땄다.
그러나 아시안게임 금메달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정호원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윤 코치는 “평소 정호원과 연습경기에서는 한수의 승률이 30% 정도였다”면서 “세계 정상급의 선수이기 때문에 부담을 버렸고 ‘크게 지지만 말자’고 생각했다.아들에게는 ‘잘할 수 있다’는 말만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호원이는 노련한 선수지만 점수가 기울면 누구나 긴장하게 마련”이라면서 “2엔드가 끝나고서 점수가 많이 벌어진 것을 보고 ‘우리가 이길 수 있겠구나’하고 확신했다.신이 도왔던 것 같다”며 웃었다.
코치와 선수이기 이전에 모자지간인 둘은 경기가 끝나자마자 얼싸안고 기쁨을 나눴다.윤 코치는 아들에게 ‘고맙다’는 말만 한없이 반복했다.
윤 코치는 “아들이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주변 사람들과 정신없이 사진을 찍으면서 매우 좋아했다”면서 “기뻐하는 것을 보니 그간 고생한 것을 다 보상받은 기분이다”라며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그는 “세계선수권대회보다 확실히 종합대회에서 금메달을 땄기 때문에 관심을 많이 받는 것 같다”면서 “집안일을 신경 안 쓰고 운동에 전념할 수 있게 도와준 가족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