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월드컵> 사상 첫 16강 이룬 윤덕여 “더 욕심 내겠다”

<여자월드컵> 사상 첫 16강 이룬 윤덕여 “더 욕심 내겠다”

입력 2015-06-19 14:14
수정 2015-06-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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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 너무 헌신적이어서 안쓰러울 정도” “이제 팬들 눈높이 높아져…더 성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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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가득한 윤덕여 감독
미소 가득한 윤덕여 감독 2015 캐나다 여자 축구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에 성공한 한국 대표팀 윤덕여 감독이 19일(한국시간) 오전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여자 축구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승리와 16강 진출을 이뤘으나 ‘기적의 팀’ 윤덕여호의 욕심은 여전했다.

윤덕여 감독은 프랑스와의 2015 캐나다 여자 월드컵 16강전을 사흘 앞둔 19일(한국시간) 결전지인 몬트리올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초 목표는 다 달성했으나 우리는 더 욕심을 내고 있다”고 힘줘 말했다.

스페인과의 벼랑끝 승부에서 기적의 역전승을 거두며 본선 도전 12년 만의 승리와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모두 잡은 윤덕여호다.

그러나 이번 대회가 한국 여자 축구 부흥의 기폭제가 되기 위해서는 내친김에 더 많은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게 윤 감독의 생각이다.

그는 “여자 축구 저변이 워낙 좁다”면서 “우리가 잘해야 후배들이 많아진다는 것이 애초 우리의 시작점이었다”고 강조했다.

’박은선(로시얀카) 카드’를 아끼다가 스페인전에야 그를 선발로 투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박은선이 예전보다 몸 자체가 좋지 못하다는 게 솔직한 입장”이라면서 “그러나 3차전을 앞두고는 상대 수비수들을 최대한 지치게 만드는 등 박은선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생겨 선발 출전시켰다”고 설명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함께한 태극낭자들을 보면 “너무 헌신적이어서 안쓰러울 정도”라며 애틋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월드컵을 통해 팬들의 눈높이가 더 높아졌고 (냉정한) 평가를 하는 분들도 나올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윤 감독과의 일문일답.

-- 어제 잠은 잘 잤나.

▲ 이겼더니 잠 못자도 덜 피곤한 것 같다. 많은 분들이 축하 문자메시지를 주시길래 답장도 좀 보내느라 늦게 잤다. 한 새벽 4시는 넘어서 잔 것 같다. 그런데 오늘 일어났더니 확실히 덜 피곤하더라. 기분 탓인 듯하다.

-- 지난해에 본선 조추첨 할 때 몬트리올 왔지 않나. 그 때 무슨 결심을 했나.

▲ 조추첨은 오타와에서 했고, 몬트리올 시청에서 E조 팀 환영 행사가 있어 1박을 했다. 그때 한국 여자 축구가 12년만에 본선에 나서는데 나와 선수들이 평생 잊지 못할 기억에 남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청 행사 방명록에 ‘멋진 추억을 남기고 싶다’고 썼다. 그런데 실제로 좋은 추억 남긴 곳은 몬트리올이 아니라 오타와였다.(웃음)

-- 그때 16강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봤나. 냉정하게 봐서.

▲ 우리(18위)가 그래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코스타리카(37위)보다는 높지 않나. 코스타리카가 본선 첫 출전이기도 하고. 그래서 나도 기대는 좀 했다. 만약 이 나라들 그대로 남자팀이었으면 정말 죽음의 조였겠지.

스페인은 솔직히 걱정이 좀 됐다. 스페인 감독(이그나시오 케레다·65)이 진짜 오래(1988년∼현재) 그 자리에 있었다. 그 감독은 스페인 선수들이 어릴 때부터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다 본 거다. 팀이 잘 꾸려져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계속 조금씩 키워온 팀일 테니까 자신감도 있을 것이고. 감독의 철학을 선수들이 공유한다는 것은 전력 외적으로 굉장히 크게 작용하는 요소다. 나는 사실 스페인전에 대해 굉장히 우려한 부분이 있었다.

-- 여자축구에 발을 들인 지 얼마 안된 감독으로서의 콤플렉스라고 봐도 되나. 여자팀 맡은 지 2년 반밖에 안 되지 않았나.

▲ 콤플렉스라기보다는…. 더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한다. 특히 선수들과 어떻게 하면 신뢰를 더 깊게 구축할 수 있을까를 두고 고민을 많이 한다. 다 딸같은 선수들이어서 사랑스럽지만 잘못하면 꾸중을 할 수도 있어야 하는데…. 중요한 것은 선수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왜 그래야 하는가를 이해시켜야 하는데, 그런 부분을 고민 많이 한다.

-- 스페인전 끝나고 지소연과 조소현이 공동취재구역에서 감독 얘기를 하더라. 화를 잘 안 내시고 인자하다고 표현하더라.

▲ 사실은 성질이 안 좋다. 연애할 때 부인이 경기장 와서 내 모습 보고 놀랐다더라. 과격하게 플레이해서 말이다. (윤 감독은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과의 2차전에서 퇴장을 당했다. 그는 월드컵에서 퇴장당한 첫 한국 선수다) 지기 싫어했고 근성과 투지가 좋았다. 그런데 우리 팀에서는 크게 혼날 만한 일을 하는 선수가 없다.

-- 가장 화를 많이 냈을 때가 언젠가.

▲ 올해 초에 키프로스컵 대회(1무3패) 나갔을 때 화 많이 냈다. 상대는 달려들어서 태클 들어오는데 우리 선수들은 걷어차이고 다치기만 하더라. 그게 너무 화가 나서 ‘왜 너희들은 저렇게 못하냐’고 고함을 쳤다.

-- 그러니까 선수들이 다치는 게 화가 났던 것 아닌가. 화를 낸 이유가 참 자상하다. 남자와 여자 선수 지도해 보니 어떤 차이가 있나.

▲ 여자 선수들은 자존심이 잘 상한다. 다 모여있을 때 특정 선수 질책하면 많이 마음 상해하더라. 남자놈들이야 뭐…. 여자 선수들은 성향 파악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 그래서 윤영길(한국체육대학 스포츠심리학과 교수) 멘탈 코치를 영입한 것인가.

▲ 우리 선수들이 어디 하소연할 데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윤 박사의 존재에 대해 참 만족하는 것 같다. 의사들이 환자 얘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치유가 된다는 얘기 하지 않나. 분위기에 변화가 있을 때 윤 박사가 숙소 벽에 좋은 말이 적힌 A4용지를 붙이곤 한다. 글귀 하나가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선수들이 얻어갈 수 있는 걸 다 얻어가더라.

스페인전 직전에 윤 박사가 ‘심리적 관성’이라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코스타리카전을 당하면서 마쳤고 스페인은 브라질을 거세게 몰아붙이며 골대까지 맞추면서 경기를 마쳤다. 이런 분위기가 다음 3차전까지 연결이 된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2-1로 역전할 때까지의 과정과 상황만 기억하자고 했다. 그런데도 굉장히 힘든 경기를 했다.(웃음)

-- 후반전에 역전골 넣은 김수연을 교체 투입한 배경은. 선발로 투입할 생각은 안했나.

▲ 전반전부터 사실 (교체) 생각을 했다. 그런데 너무 일찍 교체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김)수연이가 햄스트링(허벅지 뒤쪽 근육) 부상에서 어느 정도 회복했지만 선발로 넣을 수는 없었다. 일단 선발은 90분을 뛸 수 있는 선수를 넣어야 한다고 봤다. 수연이에 대해 체력적인 안배를 해서 그 시점(하프타임)에 투입한 거다.

-- 박은선 선발 출전 놓고도 고민 많이 했겠다.

▲ 선발로 넣을지 후반에 교체 투입할지를 두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변화를 후반전에 주려면 (박)은선이를 선발로 넣고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도록 하는 게 낫다고 봤다. 상대 수비수를 많이 끌고 다니라고 주문했고 은선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줬다. 팀을 위해서 열심히 한 것 고맙게 생각한다.

-- 박은선을 또 투입할 생각이 있나.

▲ 몸상태를 또 봐야한다. 어제도 경기중(전반 23분)에 발 다쳐서 쓰러지고 절뚝거렸지 않나. 어제 경기에서 가장 불안했던 게 그 순간이다. 전반전에 교체카드를 쓰기가 쉽지 않지 않나.

-- 선제골 허용했을 때보다 박은선이 다친 순간이 더 불안했나.

▲ 선제골이야 우리가 실점을 먼저 할 수도 있는 것이고…. 그리고 어차피 우리도 득점했지 않나. 중요한 것은 은선이가 버텨서 후반전에 (계획대로) 교체카드를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제는 그 카드가 잘 먹혔다.

-- 박은선이 왜 1, 2차전에 못 나오는지에 대해 국내 팬들의 궁금증이 매우 컸다.

▲ 은선이가 예전보다 몸 자체가 좋지 못하다는 게 나의 솔직한 입장이다. 어제 경기력을 봤겠지만 국내에 있을 때보다 떨어져있다. 외국(러시아)에서 힘들게 1년간 혼자 생활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지)소연이와는 상황이 다르다. 소연이는 외국 생활을 오래 해봤고 옆에서 도와주는 분들도 있다. 그런데 은선이는 혼자 있고 말도 안 통하지…. 참 힘들 거다.

아무튼 박은선 기용과 관련한 부담은 내가 짊어져야 할 부분이었다. 그런데 준비가 아직 안 된 선수를 내보낼 수는 없지 않나. 그것(여론) 때문에 내가 흔들릴 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빨리 컨디션을 끌어올리려고 계속 희망의 메시지를 줬다. 그러다가 3차전을 앞두고는 박은선을 활용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긴 것이다. 쓸 수 있는 만큼만 쓰겠다는 생각으로 내보냈다.

-- 굴곡진 축구인생을 산 박은선에 대한 배려도 있었나.

▲ 절대 배려 차원은 아니다. 이영표(해설위원)가 말했듯이 월드컵은 증명하는 자리 아닌가.

-- 대표팀 선수들 훈련하는 것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 안쓰럽다. 내가 봐도 훈련 힘든데 정말 열심히 한다. 하려고 하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 꾀도 절대 안 부린다. 너무나 헌신적으로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어떤 때에는 내가 마음이 아프다. 남자팀을 많이 맡아봤으나 이런 헌신적인 면에 있어서는 지금 여자 대표팀이 제일 낫다. 그 자세에 대해 지도자로서 아주 고맙게 생각한다.

그런데 1, 2차전 때에 우리 팀 기사에 안 좋은 댓글이 많이 달렸지 않나. 선수들이 이렇게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댓글을 읽고 그냥 못 넘기고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 같더라.

-- 휴대전화 압수하면 되지 않겠나.

▲ 나 그런 사람 아니다. 그리고 어차피 다 보게 된다.

-- 16강 진출한 것이 여자축구 부흥의 기폭제가 될까.

▲ 당초 목표는 다 달성됐으나 우리는 더 욕심을 내고 있다. 우리가 잘해야 후배들이 많아진다. 애초에 그게 우리의 시작점이었다. 워낙 여자 축구 저변이 좁지 않나. 더 많은 여자 아이들이 축구 선수로 입문하도록 유도하려면 우리가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이제 본선 무대도 두 번 밟았고 16강에도 올랐다. 이제 여자 축구를 향한 잣대가 예전처럼 온정적이지는 않을 것 같다. 좀 더 냉정하게 평가받게 될 테다.

▲ 좋은 지적이다. WK리그도 안보시던 분들이 이번 월드컵 보면서 눈이 높아졌을 것이다. 남자 축구도 마찬가지였다. 오래전에 분데스리가 중계를 해주면서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지기 시작했고 지금은 프리미어리그 등등 세계적인 수준의 리그를 TV에서 중계해준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서 여자 축구를 접하게 된 분들이 많을 것이다. 이제 나름대로 (냉정한) 평가를 하는 분들도 나올 거다. 팬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은 (이미) 이렇게 와 있다. 좋은 쪽으로 관심이 흘러갈 수도 있다. 어찌됐건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

-- 여자축구계가 배타적인 면도 있지 않나. 당신이 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자 기존에 여자축구인들 사이에서 불만도 있었다고 들었다. 느꼈나.

▲ 느꼈지.(웃음) 남자 축구계에 있다가 여기 처음 왔을 때 굉장히 힘들었다. 물론 그것 또한 제 몫이라고 생각했다. 현재 (여자축구)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섭섭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술위원회에서 잘 선택했기에 여기까지 온 것 아니겠나.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 여자축구계에 계속 몸담을 것인가.

▲ 일단 지금 행복하다는 말만 하겠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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