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뛴 후배들에게 메달 못 안겨 미안”

“함께 뛴 후배들에게 메달 못 안겨 미안”

입력 2010-11-26 00:00
수정 2010-11-26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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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떼는 ‘하키의 전설’ 여운곤

254번째 A매치였다. 올림픽 3번과 아시안게임 4번. 15년 대표 생활이 이 한 경기로 매조지됐다. 25일 광저우 아오티 하키필드에서 열린 한국과 인도의 아시안게임 3·4위전. 메달 말고도 다른 의미가 있는 경기였다. 한국 하키의 전설이 떠난다. 이날이 대표 생활 마지막 경기였다. 하키 대표팀 맏형 여운곤 얘기다. 올해 37세. 지난 1995년 처음 태극 마크를 달았다. 강산이 한번 바뀌고, 반쯤 또 바뀔 동안 대표팀을 지켜왔다. 축구로 치면 홍명보가 아직 선수 생활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이제 떠난다. 더 이상 태극마크 단 여운곤을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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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3번·AG 4번 대표팀 맏형

3·4위전. 사실 힘 빠지는 경기였다. 한국 하키팀의 애초 목표는 금메달이었다. 2002년 부산 대회와 2006년 도하 대회 모두 우승을 차지했었다. 이번에도 모두가 기대한 건 당연히 우승이었다. 평소 관심도 없고 지원도 모자란다. 그래도 큰 국제종합대회가 돌아올 때마다 사람들이 바라는 결과물은 크다.

지난 23일 파키스탄과의 준결승이 아쉬웠다. 1-1로 비긴 뒤 연장에서도 승부를 못 가렸다. 승부치기에 돌입해서도 팽팽했다. 양쪽 모두 실수 없이 4-4까지 갔다. 마지막 5번째 슈터로 나선 게 여운곤이었다. 하키 대표팀 조명수 감독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베테랑을 찾았다. 그만큼 신뢰가 컸다. 그러나 실수가 나왔다. 왼쪽 골망을 보고 강하게 때린 게 포스트를 맞고 튀어나왔다. 상대 마지막 슈터는 골을 성공시켰다. 졌다. 3회 연속 금메달 획득 목표가 날아갔다. 팀원 모두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여운곤은 이런 후배들을 다독여 이날 경기에 나섰다.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들었지만 힘을 내야 했다. 이유가 있다. “지금 하키를 시작한 어린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메달을 따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운동할 수 있으니까요.”

여운곤은 작은 지원이라도 계속 유지되려면 메달을 따고 안 따고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겨야 했다. 그래서 억지로 자신과 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아시안 게임 화보] 광저우 정복한 대한민국 대표 선수들

●관심·지원 없이 기대 큰 현실 아쉬워

인도는 껄끄러운 상대였다. 아시아 하키 강국이다. 특히 최근 상승세가 눈에 띈다. 국제대회에 많이 참가하면서 선수들 수준이 높아졌다. 그에 비해 한국은 올해 내내 국제경기를 거의 못 치렀다. 국내팀을 연습 상대 삼아 훈련을 마쳤다. 그래도 한국은 초반부터 강하게 밀어붙였다. 인도는 움츠리면서 기회를 노렸다. 서로 점수가 안 났다. 한국은 인도의 밀집수비를 좀체 못 뚫었다.

그러다 후반 단 한번 역습을 허용했다. 0-1. 오히려 한골을 줬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한국은 패배했다. 대회 4위. 동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휘슬이 울리자 선수들은 주저앉았다. 입술을 한일자로 다문 여운곤이 그 사이를 돌아다녔다. 등을 두드리고 일으켜 세웠다. “괜찮다. 괜찮아.” 일일이 악수하고 포옹한 뒤 그라운드를 빠져나왔다. 15년 대표 선수 생활이 이렇게 끝났다. 여운곤은 “그래도 후회는 없다.”고 했다. “다만 후배들에게 너무 미안하네요. 선배로서 마지막으로 작은 선물이라도 주고 싶었는데….” 하키 전설의 눈가가 붉었다.

광저우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2010-11-26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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