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소·파출소 직원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메르스와 전쟁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 국면에 들어가기까지 수많은 사람이 맡은 자리에서 구슬땀을 흘려야 했다.보건소와 지구대·파출소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매일같이 추가 근무를 하며 방역을 지원하는 풀뿌리 조직으로서 역할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감염을 무릅쓰는 의료진 외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땀을 흘린 이들의 헌신이 메르스 극복에 큰 힘이 되고 있는 것이다.
격리 장소를 무단으로 이탈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기적인 일부 메르스 의심환자가 있었지만, 다른 한쪽에는 같은 동네의 메르스 의심 환자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는 성숙한 시민 의식이 희망의 불꽃이 되고 있다.
◇ 하루도 쉬지 못하고 분투 보건소 직원들…과로로 실신하기도
서울 은평보건소 이병두(59) 감염병관리팀장.
그는 메르스 사태가 본격화한 5월 말부터 지금까지 하루도 쉬지 못한 채 관할구역 내 상황을 총괄하고 있다.
오전 7시 전에 출근해 자정이 다 돼서야 퇴근하는 격무의 연속이다. 매일 가택 격리자와 능동 감시자 현황을 파악해 관할 자치구, 경찰, 소방당국 등 관계기관에 통보한다. 시시각각 발생하는 상황에 어떻게 대응할지 판단하는 것도 이 팀장의 주된 임무다.
숫자 하나라도 틀리면 상부의 판단에 혼선을 줄 수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메르스 관련 현황을 교차 점검하느라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다.
그는 간혹 방호복으로 무장하고 현장에 나가 메르스 의심환자를 직접 대면하기도 한다. 관내에 의심환자가 발생하면 의료진과 함께 환자를 지정 의료기관으로 옮겨 증상을 파악하고 검체를 채취하는 작업을 지원해야 한다.
이 팀장은 가족이 걱정할까 봐 집에는 자신이 하는 업무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귀가하면 그날 입은 옷을 재빨리 세탁기에 던져넣는 일이 어느새 습관이 됐다.
이 팀장은 “우리 자신을 지키지 못하면 환자도 지킬 수 없는 만큼 직원들도 쉬는 시간만큼은 충분히 쉬게 하고 나 스스로도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면서 “맡은 일인 이상 힘든 상황은 감내한다고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구로보건소 소속 안향섭(44·여) 주무관. 그는 지난 5월 말 구로구에 꾸려진 메르스 비상방역대책본부로 파견됐다. 매일 오후 11시까지 자가격리반, 홍보반, 역학조사반 등 관련 부서 업무를 조율하면서 빗발치는 민원인 전화에 응대해야 했다.
결국 이달 11일 오전 보건소 내 강당 대책본부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다.
병원 응급실에서 링거를 맞고 2시간 만에 의식을 되찾은 안씨는 바로 업무에 복귀했다.
안씨는 “구민들이 저희를 너무도 필요로 하던 시점이었고 다른 동료도 모두 일하고 있어 혼자 누워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며 “지금은 동료가 배려해줘서 건강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종로구 보건소는 청정 자치구로 남기 위해 다른 구에 거주하는 의심환자까지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열성을 보였다.
종로구는 실거주자 수가 적고 자가격리자 수도 10∼15명에 불과하지만 회사가 밀집해 타 지역 거주 환자가 종로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종로구 보건소 방역팀이 다른 지자체 거주 환자까지 도맡아 관리하는 이유다.
그러면서도 광장시장, 통인시장 등 재래시장과 종로경찰서 유치장까지 지자체 내 밀집시설은 차량 두 대를 동원해 주말없이 매일 소독하고 있다
박승춘 종로구 보건소 보건위생과 방역팀장은 “강남구에 살지만 종로구에서 회사를 다니는 의심환자부터 광진구, 전주 완산구 거주 의심환자까지 우리가 모두 관리했다”고 말했다.
◇ 메르스 사태 뒷수습 도맡아 하는 파출소 경찰관
메르스 극복에 빼놓을 수 없는 조연이라면 파출소 경찰관을 꼽는다. 메르스 의심 환자가 격리 조치를 거부하거나 소재 파악이 안 되면 뒷수습을 하는 일이 이들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이들 중 확진 환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삼성서울병원이 관할인 일원파출소 소속 경찰관 31명은 남모를 고생을 해야 했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발생하는 사건, 사고는 외견상 메르스 환자와 무관해 보여도 방호복을 착용한 채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만큼 부담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자가격리된 의료진과 병원 관계자, 메르스 의심환자 등이 연락이 끊기거나 무단이탈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지난 10일에 한 메르스 확진 환자가 아내와 함께 입원하고 싶다고 우기면서 격리실 입원을 거부하는 소동을 일으켰다.
일원파출소 경찰관 3명은 보건소 차량에서 뛰쳐나오려는 환자를 제지하며 네 시간이 넘도록 설득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결국 이 남성은 결국 자정이 다 돼서야 입원 수속을 밟았다.
앞서 1일에는 메르스 확진 환자의 보호자가 식사와 치료를 제공하지 않는다며 응급실에서 소란을 피워 경찰관들이 마스크와 장갑만 끼고 급히 출동하기도 했다.
일원파출소 관계자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신고가 들어오면 걱정부터 앞서지만 해야만 하는 일인 만큼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자택 격리자와 고통을 나눈 성숙한 시민의식
메르스 감염 공포와 주변의 불안한 시선에 갇혀 지내는 자택 격리자들을 따뜻하게 품은 이웃들도 있다.
서울 성동구 성수2가 1동에서는 주민자치위원 20여명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자택 격리자들에게 사과, 토마토 등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전달했다.
이들은 구청에서 자택 격리자에게 지급한 음식 대부분이 라면, 즉석밥 등 인스턴트 식품이라는 소식을 듣고 장을 보러 나오지 못하는 자택 격리자들의 건강을 위해 과일과 채소를 지원하기로 한 것.
주민자치위원 허병렬(62)씨는 “자택 격리자들이 본인 건강을 염려하고 있겠지만 답답한 환경에서도 사회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며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을 챙겨야겠다는 데 마음이 모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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