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명확한 기준 필요하다”며 2년 넘게 허송세월
2011년 연구개발(R&D) 자금 유용·횡령을 막고자 도입된 제재부가금제도가 한번도 활용되지 않은 채 사장(死藏)돼 온 것으로 드러났다.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재부가금제도 활용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자 국회가 R&D 자금 유용·횡령 때 제재부가금 징수를 의무화하는 별도 법안까지 제출하며 압박하고 나섰다.
27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민주당 전순옥 의원실과 산업부에 따르면 국회는 R&D 자금이 ‘눈먼 돈’처럼 쓰이는 것을 막고자 2011년 11월 산업기술혁신촉진법’을 개정해 제재부가금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R&D 자금의 유용·횡령 때 해당금액의 5배까지 물어내도록 하는 것이다. 유용·횡령액을 환수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재산권을 일부 박탈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성격을 띤다. 국가 예산을 허투루 쓰면 강력한 처벌이 뒤따른다는 경각심을 심어줄 필요가 있다는 여론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제도 시행 2년이 넘도록 제재부과금이 징수된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관련 법은 해당 부처가 자율적으로 제재부과금을 징수하도록 규정했는데 정작 산업부는 그럴 만한 의지가 없었다.
그 사이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한국산업기술진흥원 등 3개 산하기관에서는 2012∼2013년 2년간 300억원대의 R&D 자금 유용·횡령이 지속됐다.
산업부 측은 “국민의 재산권을 직접 제한하는 일인 만큼 세부 시행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지만 2년이 넘도록 아무런 추가 조치가 없었다는 것 자체가 산업부의 ‘무사안일’을 방증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순옥 의원실 관계자는 “산업부에 집행 의지만 있다면 6개월 내에 가능한 일”이라며 “집행 이후 민원이 발생할 경우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소극적으로 임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산업부가 제도 집행을 미적대자 보다 못한 국회가 제재부가금 징수를 임의규정에서 강제규정으로 바꾸는 산업기술혁신촉진법 개정안을 또다시 들고나왔다.
개정안에 따르면 산업부 장관은 R&D 자금 유용·횡령이 발생할 경우 내부 심의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의무적으로 제재부가금을 징수해야 한다.
이 개정안은 이달 21일 전순옥 의원이 여·야 동료 의원 10명의 동의를 받아 대표발의했다. 국회가 입법권을 동원해 정부부처를 압박하는 모양새가 된 것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개정안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름대로 제도 시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현행법에는 없는 심의 규정이 신설된 만큼 공정성과 수용성을 어느 정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