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월 서민들의 장기 연체 채무 해결을 지원하기 위해 출범한 국민행복기금이 오는 29일로 1년을 맞았다.
행복기금은 그동안 서민들의 빚 부담을 완화해 줌으로써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정부의 공약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성과라는 호평도 나온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행복기금이 서민금융기구로 자리 잡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개인의 빚을 국가가 갚아주는 것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김모(41.여) 씨는 10년 가까운 ‘빚쟁이’ 신세를 최근 면할 수 있게 됐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김 씨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처음 생긴 것은 2002년.
함께 사는 동생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동생 병원비와 합의금을 마련해야 했다.
김 씨는 동생을 도우려고 당시 갖고 있던 카드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카드를 이용해 1천만원 이상을 대출받았고, 이를 갚으려고 카드 5장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동생의 재판 비용을 대려고 남편의 카드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당시 가정주부여서 수입이 없었던 터라 카드빚을 막으려고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까지 찾아갔다. 이를 알게 된 남편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이후 남편의 도움으로 원금은 조금씩 갚아 나가기는 했지만 50%를 넘는 이자율은 원금을 훌쩍 뛰어넘었고 김 씨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자녀 2명은 커가고 생활비는 고정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2004년께 빚 갚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후 카드사 등에서 채무 상환을 독촉해 왔다. 해당 직원이 집에 직접 찾아온 것은 물론 수백 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법원에서 압류장도 날라 왔다. 법원에서 온 엽서만 수백 장에 이른다. 김 씨는 밀려드는 채무 상환 독촉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계속되는 연체만 10년. 그는 행복기금에서 채무 부담을 덜어준다는 말을 듣고 신청했고, 최근 채무 조정을 받았다.
원금의 3배가 된 이자를 전액 탕감받았고, 원금의 절반도 탕감받았다.
앞으로 1만3천원씩 10년간 성실히 분할 상환하면 신용이 회복될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다.
행복기금의 지원을 받고 난 후 그는 힘을 얻어 조그마한 자영업을 시작했다. 채무 부담이 줄어들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됐다.
김 씨는 “그동안 채무 때문에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며 “이제야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기금, 서민들의 재기 ‘디딤돌’ 안착
행복기금은 이번 정부가 내세운 복지 공약 중 가장 호평을 받는다.
기초연금이나 무상보육 같은 복지 정책은 아직 삐걱거리고 있지만, 국민행복기금은 서민들을 위한 밀착형 정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행복기금은 김 씨처럼 서민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고 있다.
수년간 계속된 빚과 이를 갚지 못해 발생하는 연체, 끊이지 않는 채권 추심 등으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이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중 채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채 규모를 넘어서고 신용 회복의 기회도 없어져 오늘날과 같은 신용사회에서는 발을 붙이기가 어렵다.
이런 이들이 채무 조정을 통해 자력갱생의 길을 찾게 된 것은 행복기금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금이 재기의 ‘디딤돌’ 역할을 한 셈이다.
여전히 빚에 쪼들리는 수많은 서민들이 존재하지만, 최소한 행복기금을 통해 채무 조정을 받은 25만명은 어느 정도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채무 부담에 제대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던 30대~50대가 대거 경제 주체로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인 효과다.
작년 10월 말까지의 채무 조정 대상자(13만5천여명)를 보면 40대가 33.4%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28.8%, 30대가 21.0%였다.
또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행복기금 수혜자(15만9천여명) 가운데에는 연 소득 2천만원 미만이 83.2%이었고, 1천만원 미만은 56.1%에 달했다.
행복기금이 소액 채무로 고통받은 저소득 서민층을 지원함으로써 사회 양극화도 어느 정도 해결에도 기여했다. 여기에 채무를 조정함으로써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서강대 박정수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복기금이 서민금융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이들에게 자력갱생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행복기금이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출범 당시 제기됐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박 교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지원을 받은 대상자들은 기금이 출범하기 이전 연체 기록으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도덕적 해이는 원천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금 지원 대상자 확대…상설화 여부 등 과제
행복기금은 올해 장학재단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대학생 때 등록금을 빌려썼다가 갚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채무 조정에 나선다. 대상자만 5만여명이다.
또 지금까지 채무 조정이 된 25만여명의 개별 신청자와는 별도로 금융권에 산재해 있는 부실 채권을 일괄 매입해 지원을 확대한다. 대상자는 94만명이다.
행복기금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이처럼 대상을 늘려나가고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처음에는 탕감된 빚을 갚아 나가지만 나중에는 다시 연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국민행복기금은 2~3년 뒤 수혜자들이 자활해 실제 경제 주체가 됐는지 평가해야 한다”며 “탕감된 지 얼마 안 된 지금의 상황으로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4천여 개에 달하는 금융기관이 참여해 서민들의 채무 부담을 지원하는 행복기금이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발생하는 연체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한시적·일시적 지원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서민들의 채무 조정 지원을 해나갈 것인지에 논의도 필요하다.
행복기금은 2013년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를 대상으로 했으며, 작년 개별 신청은 이미 작년 10월 말을 기점으로 모두 끝난 상태다. 현재로선 이전처럼 개별 신청에 의한 추가 지원 계획은 없다.
박 연구위원은 “일본에도 다중채무자 본부라는 상시적인 기구가 있다”며 “국민행복기금을 상설화함으로써 금융 차원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설화가 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실 납부자들이 받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행복기금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개인의 채무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채무 탕감을 해준다고 하지만, 국민행복기금 수혜자 가운데 제대로 자활할 수 있는 이들은 10~20%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부실 채무는 상각하고, 채무 상환이 안 되는 이들은 파산이나 회생을 시키는 등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여기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행복기금은 그동안 서민들의 빚 부담을 완화해 줌으로써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번 정부의 공약 가운데 가장 구체적인 성과라는 호평도 나온다.
그러나 앞으로 국민행복기금이 서민금융기구로 자리 잡으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개인의 빚을 국가가 갚아주는 것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김모(41.여) 씨는 10년 가까운 ‘빚쟁이’ 신세를 최근 면할 수 있게 됐다. 국민행복기금을 통해 채무조정을 받게 됐기 때문이다.
김 씨에게 감당할 수 없는 빚이 처음 생긴 것은 2002년.
함께 사는 동생이 교통사고를 내는 바람에 동생 병원비와 합의금을 마련해야 했다.
김 씨는 동생을 도우려고 당시 갖고 있던 카드로 대출을 받기 시작했다.
카드를 이용해 1천만원 이상을 대출받았고, 이를 갚으려고 카드 5장으로 돌려막기를 했다. 동생의 재판 비용을 대려고 남편의 카드까지 동원했다.
그러나 당시 가정주부여서 수입이 없었던 터라 카드빚을 막으려고 저축은행과 대부업체에까지 찾아갔다. 이를 알게 된 남편과의 관계는 악화됐다.
이후 남편의 도움으로 원금은 조금씩 갚아 나가기는 했지만 50%를 넘는 이자율은 원금을 훌쩍 뛰어넘었고 김 씨가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
자녀 2명은 커가고 생활비는 고정적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자, 그는 2004년께 빚 갚는 것을 사실상 포기했다.
이후 카드사 등에서 채무 상환을 독촉해 왔다. 해당 직원이 집에 직접 찾아온 것은 물론 수백 통이 넘는 전화가 왔다.
그리고 법원에서 압류장도 날라 왔다. 법원에서 온 엽서만 수백 장에 이른다. 김 씨는 밀려드는 채무 상환 독촉에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다.
계속되는 연체만 10년. 그는 행복기금에서 채무 부담을 덜어준다는 말을 듣고 신청했고, 최근 채무 조정을 받았다.
원금의 3배가 된 이자를 전액 탕감받았고, 원금의 절반도 탕감받았다.
앞으로 1만3천원씩 10년간 성실히 분할 상환하면 신용이 회복될 정도로 상황이 좋아졌다.
행복기금의 지원을 받고 난 후 그는 힘을 얻어 조그마한 자영업을 시작했다. 채무 부담이 줄어들면서 남편과의 관계도 회복됐다.
김 씨는 “그동안 채무 때문에 불안해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며 “이제야 제정신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행복기금, 서민들의 재기 ‘디딤돌’ 안착
행복기금은 이번 정부가 내세운 복지 공약 중 가장 호평을 받는다.
기초연금이나 무상보육 같은 복지 정책은 아직 삐걱거리고 있지만, 국민행복기금은 서민들을 위한 밀착형 정책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행복기금은 김 씨처럼 서민들에게 경제적 자립을 위한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큰 점수를 받고 있다.
수년간 계속된 빚과 이를 갚지 못해 발생하는 연체, 끊이지 않는 채권 추심 등으로 고통받았던 서민들이 어느 정도 부담을 덜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다중 채무자들은 대부분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부채 규모를 넘어서고 신용 회복의 기회도 없어져 오늘날과 같은 신용사회에서는 발을 붙이기가 어렵다.
이런 이들이 채무 조정을 통해 자력갱생의 길을 찾게 된 것은 행복기금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기금이 재기의 ‘디딤돌’ 역할을 한 셈이다.
여전히 빚에 쪼들리는 수많은 서민들이 존재하지만, 최소한 행복기금을 통해 채무 조정을 받은 25만명은 어느 정도 삶의 희망을 찾을 수 있게 됐다.
특히, 채무 부담에 제대로 경제 활동을 하지 못했던 30대~50대가 대거 경제 주체로 복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 점도 긍정적인 효과다.
작년 10월 말까지의 채무 조정 대상자(13만5천여명)를 보면 40대가 33.4%로 가장 많았고, 50대가 28.8%, 30대가 21.0%였다.
또 지난해 5월부터 올해 1월까지 행복기금 수혜자(15만9천여명) 가운데에는 연 소득 2천만원 미만이 83.2%이었고, 1천만원 미만은 56.1%에 달했다.
행복기금이 소액 채무로 고통받은 저소득 서민층을 지원함으로써 사회 양극화도 어느 정도 해결에도 기여했다. 여기에 채무를 조정함으로써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서강대 박정수 경제학과 교수는 “경기가 호전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행복기금이 서민금융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줌으로써 이들에게 자력갱생의 기회를 주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행복기금이 안착할 수 있었던 데에는 출범 당시 제기됐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큰 몫을 차지했다.
박 교수는 “도덕적 해이에 대한 우려가 있기는 하지만, 지원을 받은 대상자들은 기금이 출범하기 이전 연체 기록으로 혜택을 받았기 때문에 애초부터 도덕적 해이는 원천 봉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기금 지원 대상자 확대…상설화 여부 등 과제
행복기금은 올해 장학재단의 부실 채권을 사들여 대학생 때 등록금을 빌려썼다가 갚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채무 조정에 나선다. 대상자만 5만여명이다.
또 지금까지 채무 조정이 된 25만여명의 개별 신청자와는 별도로 금융권에 산재해 있는 부실 채권을 일괄 매입해 지원을 확대한다. 대상자는 94만명이다.
행복기금이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안착하면서 이처럼 대상을 늘려나가고 있지만,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출범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처음에는 탕감된 빚을 갚아 나가지만 나중에는 다시 연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연구위원은 “국민행복기금은 2~3년 뒤 수혜자들이 자활해 실제 경제 주체가 됐는지 평가해야 한다”며 “탕감된 지 얼마 안 된 지금의 상황으로 성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했다.
4천여 개에 달하는 금융기관이 참여해 서민들의 채무 부담을 지원하는 행복기금이 서민금융의 마지막 보루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또다시 발생하는 연체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도 남아 있다.
한시적·일시적 지원에 그칠 것인지, 아니면 지속적으로 서민들의 채무 조정 지원을 해나갈 것인지에 논의도 필요하다.
행복기금은 2013년 2월 말 기준 6개월 이상 연체자를 대상으로 했으며, 작년 개별 신청은 이미 작년 10월 말을 기점으로 모두 끝난 상태다. 현재로선 이전처럼 개별 신청에 의한 추가 지원 계획은 없다.
박 연구위원은 “일본에도 다중채무자 본부라는 상시적인 기구가 있다”며 “국민행복기금을 상설화함으로써 금융 차원에서 재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욱 효율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상설화가 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성실 납부자들이 받는 상대적인 박탈감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행복기금을 바라보는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정부가 개인의 채무에까지 개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채무 탕감을 해준다고 하지만, 국민행복기금 수혜자 가운데 제대로 자활할 수 있는 이들은 10~20% 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부실 채무는 상각하고, 채무 상환이 안 되는 이들은 파산이나 회생을 시키는 등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정부가 여기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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