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미술계를 뜨겁게 달궜던 이름은 아마도 ‘론 뮤익’이 아닐까 싶다. 이 호주 출신 조각가의 개인전이 지난 4월부터 최근까지 94일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렸는데 무려 53만 3000여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 하루 평균 5600여명이 다녀간 셈으로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상반기뿐 아니라 올 한 해 가장 인기 있는 전시가 될 것이란 전망도 과언이 아니다.
론 뮤익은 한국 대중에게 익숙한 작가는 아니다. 앞서 해외에서는 1997년 찰스 사치의 컬렉션을 중심으로 한 전시에 뮤익의 조각 ‘죽은 아버지’가 소개되고 200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높이 5m 크기의 조각 ‘소년’을 선보이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한국에서는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3점, 2021년 리움미술관 재개관전에서 1점이 소개된 적 있지만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다.
무엇이 대중을 움직이게 했을까. 극사실주의 조각가인 뮤익은 모공과 미세한 털까지 구현해 낸다. 그의 탁월함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극단적 크기 변형, 즉 평범한 인물을 아주 작게 만들거나 거대하게 함으로써 관람객에게 낯선 경험을 선사하는 데 있다. 대중이 봤을 때 어렵지 않으면서도 신기하게 혹은 낯설게 느껴지는 그 지점이 대표적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또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20~30대를 중심으로 미술 관람객이 급증하고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 적합한 전시가 주목받는 시대적 흐름과도 맞아떨어졌다. 전체 관람객의 70%가 20~30대였던 점, 국립현대미술관 SNS에 업로드된 ‘론 뮤익’ 관련 게시물의 노출 총수가 325만 6000여건이었던 것도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단순히 ‘인스타그래머블’ 해서 이런 대기록을 세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 “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뮤익의 말에서 힌트를 찾아본다. 그의 작품은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인간 내면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불안, 연약함, 죽음 등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작품 안에 녹여 냄으로써 관람객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현대미술이 어렵고 난해하다는 편견과 달리 그의 작품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몰입을 위한 미술관의 노력도 한몫했다. 의도적으로 벽면에 작품 설명 글을 배제하고, 전시 마지막 공간에 작가의 작업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과 작업실 사진을 배치해 관람객이 작가의 작업 세계에 깊이 빠져들 수 있도록 유도했다. 또 전시장 입구에 교육 공간을 마련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은 대중적 인기와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전시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물론 관람객 수로 전시의 질을 평가할 순 없다. 하물며 공공미술관이 인기에 편승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관람객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라도 이 경이로운 수치에 관한 체계적 연구가 있어야 할 시점인 것만은 분명하다.
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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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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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경 문화체육부 기자(차장급)
2025-07-1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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