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이 미국에 도착하는 시간이 중국 시간으로 정확히 몇 시인지 알고 싶은데요.”
“질문은 팩스로 보내세요.”
“….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에요. 모든 질문은 팩스로 보내 주셔야 합니다.”
“팩스로 질문을 보내면 답은 꼭 해 주시나요?”
“그건 확답 드릴 수 없어요.”
지난 13일 오전 중국 베이징에 있는 외교부 신문사(司·우리나라의 ‘국’에 해당) 관계자와의 전화 통화 내용이다.
외국 언론과의 대화 내용은 근거로 남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답변을 뭉개기 위한 절차인지는 모르겠으나 ‘명성’대로 베이징의 취재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국내 언론사들은 주로 미국 워싱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 주요 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베이징은 굴기(?起·우뚝 섬)하는 중국의 국격과 달리 ‘특파원의 무덤’이라는 끔찍한 별명을 갖고 있다. 중국에선 취재는 고사하고 현지 언론에서조차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뉴스나 해설을 제공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방중’ 같은 세계적인 뉴스에 대해 외교 관례를 이유로 김정일이 베이징을 떠난 뒤에야 정식으로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 유통되는 해외 뉴스의 90% 이상은 서방 언론에 의해 주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0년 10월부터 1년여간 국내 주요 일간지 1면에서 처리된 중국 관련 뉴스의 소스도 최소 50%는 영·미 계열 매체다. 나머지도 물론 중국 매체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어림잡아 중국 관련 빅 뉴스는 1~2개월 주기로 출현한다. 예컨대 ▲류샤오보(劉曉波) 노벨평화상 수상(2010년 10월) ▲시진핑 군사위원회 부주석 선출(2010년 10월) ▲오바마-후진타오(胡錦濤) 세기의 대화(2011년 1월) ▲중국판 재스민 사건(2011년 2월) ▲상하이 스캔들(2011년 3월) ▲네이멍구 시위(2011년 5월) ▲원저우 고속철 추돌 참사(2011년 7월) ▲중국 우주도킹 성공(2011년 11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중국 매체만 인용해도 전달이 가능한 뉴스는 원저우 고속철 참사와 우주도킹 성공 정도뿐이지만 그나마 이 역시 외신을 인용해 보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보시라이(薄希來) 충칭(重慶) 서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권력암투가 주목을 끌지만 중국 신문은 정보 제공이나 해설자 역할이 아닌 해독의 대상이다. 예컨대 충칭 지역 공산당 기관지인 충칭일보에 보시라이 사진이 전처럼 1면에 나왔느냐, 왜 갑자기 그의 노선과 배치되는 후진타오의 치국 이념을 머리기사로 실었느냐 등에 주목하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유추해야 한다.
이쯤 되면 주요 지역에 관영 언론 지국을 대거 설립해 중국의 목소리를 세계로 전파하겠다는 중국의 언론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인들 스스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중국 관영 언론의 말을 외국인이 믿어 주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한 중국 언론학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베이징이 가진 ‘체제의 경직성’만을 문제 삼기보다 척박한 취재 환경 속에서 외신과 중화권 언론이 중국 관련 기사를 쏟아 낼 수 있는 노하우를 구축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중국을 알아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중국 기사를 발굴하기 위한 우리 언론의 투자와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을 상대로 오랜 세월 외교 활동을 벌여 온 주베이징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중국 외교는 분명 벽과 같지만, 그래도 공을 들이면 안 들였을 때와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팩스 질문서는 이제 그만 보내자. 하루빨리 간단한 시간 정보쯤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국 취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jhj@seoul.co.kr
“질문은 팩스로 보내세요.”
“…. 지금 농담하시는 거죠?”
“아니에요. 모든 질문은 팩스로 보내 주셔야 합니다.”
“팩스로 질문을 보내면 답은 꼭 해 주시나요?”
“그건 확답 드릴 수 없어요.”
주현진 베이징 특파원
외국 언론과의 대화 내용은 근거로 남겨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답변을 뭉개기 위한 절차인지는 모르겠으나 ‘명성’대로 베이징의 취재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점을 느끼게 해 주는 순간이었다.
국내 언론사들은 주로 미국 워싱턴, 중국 베이징, 일본 도쿄 등 주요 지역에 특파원을 두고 있다. 이 가운데 베이징은 굴기(?起·우뚝 섬)하는 중국의 국격과 달리 ‘특파원의 무덤’이라는 끔찍한 별명을 갖고 있다. 중국에선 취재는 고사하고 현지 언론에서조차 우리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뉴스나 해설을 제공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 ‘김정일 방중’ 같은 세계적인 뉴스에 대해 외교 관례를 이유로 김정일이 베이징을 떠난 뒤에야 정식으로 발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국내에 유통되는 해외 뉴스의 90% 이상은 서방 언론에 의해 주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010년 10월부터 1년여간 국내 주요 일간지 1면에서 처리된 중국 관련 뉴스의 소스도 최소 50%는 영·미 계열 매체다. 나머지도 물론 중국 매체에서 나온 것은 아니다.
어림잡아 중국 관련 빅 뉴스는 1~2개월 주기로 출현한다. 예컨대 ▲류샤오보(劉曉波) 노벨평화상 수상(2010년 10월) ▲시진핑 군사위원회 부주석 선출(2010년 10월) ▲오바마-후진타오(胡錦濤) 세기의 대화(2011년 1월) ▲중국판 재스민 사건(2011년 2월) ▲상하이 스캔들(2011년 3월) ▲네이멍구 시위(2011년 5월) ▲원저우 고속철 추돌 참사(2011년 7월) ▲중국 우주도킹 성공(2011년 11월)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가운데 중국 매체만 인용해도 전달이 가능한 뉴스는 원저우 고속철 참사와 우주도킹 성공 정도뿐이지만 그나마 이 역시 외신을 인용해 보도한 것들이 적지 않다.
최근에는 보시라이(薄希來) 충칭(重慶) 서기를 중심으로 한 중국의 권력암투가 주목을 끌지만 중국 신문은 정보 제공이나 해설자 역할이 아닌 해독의 대상이다. 예컨대 충칭 지역 공산당 기관지인 충칭일보에 보시라이 사진이 전처럼 1면에 나왔느냐, 왜 갑자기 그의 노선과 배치되는 후진타오의 치국 이념을 머리기사로 실었느냐 등에 주목하며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유추해야 한다.
이쯤 되면 주요 지역에 관영 언론 지국을 대거 설립해 중국의 목소리를 세계로 전파하겠다는 중국의 언론 정책이 실효를 거두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짐작할 수 있다. 중국인들 스스로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중국 관영 언론의 말을 외국인이 믿어 주길 바라는 것은 모순이라는 한 중국 언론학자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정작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우리 스스로의 자세가 아닐까 싶다. 베이징이 가진 ‘체제의 경직성’만을 문제 삼기보다 척박한 취재 환경 속에서 외신과 중화권 언론이 중국 관련 기사를 쏟아 낼 수 있는 노하우를 구축한 배경에 주목해야 한다. 돌이켜 보건대 ‘중국을 알아야 한다.’고 외치면서도 정작 중국 기사를 발굴하기 위한 우리 언론의 투자와 노력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중국을 상대로 오랜 세월 외교 활동을 벌여 온 주베이징 한국대사관의 한 외교관은 “중국 외교는 분명 벽과 같지만, 그래도 공을 들이면 안 들였을 때와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고 말했다.
기약 없는 팩스 질문서는 이제 그만 보내자. 하루빨리 간단한 시간 정보쯤은 전화 한 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중국 취재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겠다고 다짐해본다.
jhj@seoul.co.kr
2012-02-18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