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내 친구의 50대/번역가

[김택규의 문화 잠망경] 내 친구의 50대/번역가

입력 2022-07-10 20:34
수정 2022-07-11 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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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택규 번역가
김택규 번역가
1971년생 고교 문예부 삼총사가 모처럼 제주도에서 뭉쳐 렌터카 여행을 했다. 정치학 박사인 친구 A는 뒤늦게 얻은 외동아들 얘기를 하느라 바빴으며 제주에 눌러앉은 지 7년째인 친구 B도 오랜만에 말 상대를 만났다고 수다가 끝이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화제가 고교 동창 C에게로 옮겨갔다. 미술부였지만 우리 문예부와 친했던 C는 얼마 전 잡지사 편집장을 곧 관두고 탐사보도 매체를 세우겠다고 내게 밝혔다. “초기 비용도 변변히 없잖아. 수익모델은 또 있고?”라고 B가 걱정을 했다. 나는 두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평생의 꿈이라잖아. 오십 넘어 마지막 모험을 해 보는 거지 뭐.” 이때 차를 몰던 A가 감탄을 하며 말했다. “걔 참 멋있네. 걔가 고등학교 때도 그렇게 멋있었나?” 우리 셋은 동시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한철에 한 번 갈아입을까 말까 한 옷차림, 누가 짓궂게 건드려도 해죽대기만 하는 표정,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텅 빈 눈동자까지 C는 그림을 조금 잘 그리는 것을 빼고는 전혀 두드러지는 게 없는 열등생이었다.

“졸업 후 3년 만에 시내에서 우연히 걔를 봤다”고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미술 화구통을 메고 여학생 서너 명과 활개 치며 걸어가고 있었어. 예전의 그 싱거운 녀석이 아니더라고.” 졸업 후 육체노동과 군 복무를 했던 C는 1년간의 피나는 입시 공부 끝에 당시 미대에 입학한 상태였다. “나도 우연히 C를 시내에서 본 적이 있어. 너보다 10년쯤 뒤에 보긴 했지만…”이라고 A가 이어서 말했다. “한 여자랑 나란히 가고 있었는데 표정이 어둡고 힘이 없어 보이더라고. 얼마 전에 만났을 때 그 여자가 누구였냐고 물어보니까 그러더라. 잡지사 다니기 시작했을 때 자기를 정말 힘들게 한 애인이니 말도 꺼내지 말라고.” 마지막 차례는 B였다. “나는 우연히 본 건 아니고 내가 하던 커피숍으로 C가 가족을 데려왔어. 아마 10년쯤 됐지? 제수씨가 한 애는 업고 두 애는 양손으로 잡고 왔는데 너무 밝은 사람이어서 보기가 좋더라고.” 나는 찬탄을 금치 못했다. 우리 삼총사는 최근에 부쩍 C와 자주 만나기는 하지만 그 전에는 오랫동안 격조했다. 하지만 고교 졸업 후 돌아가며 한 번씩 마주친 것만으로도 C의 곡절 많은 인생을 함께 증언할 수 있었다. 열정적인 미대생과 화가로 보낸 20대, 미술계에 회의를 느껴 잡지사 기자로 전업하고 연애에 홍역을 치른 30대 그리고 애 셋을 줄줄이 낳고 아내에게 꽉 쥐여살기 시작한 40대까지.

제주 바다를 바라보다가 나는 “다음에 올 때는 C도 데려오자”고 소리쳤다. B가 씩 웃으며 답했다. “그 전에 올걸. 10월에 귤 선과장이 열리거든. 퇴직 후 돈도 벌고 사업 구상도 한다고 내려온다고 했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우리는 C의 50대까지 목격하게 될 것 같다. 그것도 예전보다 훨씬 더 섬세한 눈초리로. 부디 그의 50대가 꿈꾸던 것 이상으로 행복하고 스릴 넘치기를.

2022-07-11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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