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가죽팬티 유감/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의 구석기 통신] 가죽팬티 유감/전곡선사박물관장

입력 2022-12-06 20:16
수정 2022-12-07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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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
‘아아 나는 타잔, 옆집에 살던 예쁜 순인 제인’. 어느 정도 ‘연식’이 되시는 분들은 가수 윤도현의 이 노래처럼 ‘타잔’을 꿈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타잔 아저씨처럼 용감해지고 싶어서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는 가사의 주인공처럼 타잔 흉내를 내던 아이들이 장독대며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리다가 다쳤다는 사연은 그 시절 사회 면의 단골 뉴스였고, 종례 시간은 제발 타잔 흉내 좀 내지 말라는 선생님들의 당부 속에 끝나기가 다반사였다.

타잔의 상징은 역시 가죽 팬티다. 단순하면서도 허술해 보이는 타잔의 가죽 팬티. 그러나 나무 넝쿨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곡예를 부릴 때도 벗겨지지 않는, 몸에 착 맞는 가죽 팬티를 만들어 입기까지 인류에게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짐승의 가죽을 벗겨 부드러운 가죽을 만드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짐승의 가죽을 벗긴 뒤 가죽에 붙은 살점이며 지방을 깨끗이 제거하고 말려서 얻는 가죽은 아주 거칠고 뻣뻣하다. 가죽을 부드럽게 만드는 무두질 역시 오랜 시간이 걸리는 정교한 작업이다. 그래서 나무 사이를 넘나들 때 바람에 찰랑거리는 타잔의 가죽 팬티는 사실상 명품 가죽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몸에 꼭 맞는 타잔의 가죽 팬티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인류가 발명한 수많은 발명품 가운데 그 역할에 비해 가장 저평가받는 유물로 손꼽히는 바늘, 그중에서도 실을 꿸 수 있는 구멍이 뚫린 귀 있는 바늘이 필수다. 귀 있는 바늘로 꼼꼼히 꿰매지 않았다면 타잔의 가죽 팬티 핏은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가 빙하기의 강추위를 견디며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몸에 꼭 맞아 찬바람을 막아 주고 활동에도 지장 없는 튼튼하고 효율적인 의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죽을 꼼꼼히 꿰매 편하고 따뜻한 옷을 만들 수 있게 해 준 귀 있는 바늘의 고마움을 잊지 말자. 하지만 그 최후의 공은 뼈나 뿔을 갈아 만든 얇고도 가느다란 바늘 몸통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게 해 줬던 뚜르개와 같은 정교한 석기에 돌려야 할 것이다. 결국 작은 구멍까지 뚫을 수 있는 정밀한 석기까지 만들 수 있게 된 후기 구석기시대의 석기 기술의 발달로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한편 타잔의 가죽 팬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런지 선사시대 사람은 으레 가죽 팬티를 입고 등장하곤 한다. 구석기시대의 가죽 팬티도 할 말은 많지만 이미 실을 짜고 직물을 만들기 시작했던 신석기시대 사람도, 심지어 정교한 옷감을 짤 수 있었던 청동기시대 사람도 고인돌 옆에서 가죽 팬티를 입고 돌창을 든 모습으로 그려 놓은 곳이 많아 유감이다. 혹시 선사시대는 미개하다는 뿌리 깊은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림은 고치고 우리 마음속의 편견은 지워 버리자.
2022-12-07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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