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사닥다리/황인숙

입력 2022-02-24 20:20
수정 2022-02-25 0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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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닥다리/황인숙

봄이 되면

방바닥에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겠네

은빛 사닥다리

은빛 사닥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오르겠네

사닥다리, 뼈로만 이루어진 사닥다리

한 디딤마다 내 발은 후둑후둑 떨겠네

내 손은 악착같이 사다리를 쥐겠네

사닥다리, 발이 손을 따르는 사닥다리

구름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대추나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종달새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돌멩이가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땅바닥이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내 사랑이 아슬아슬 사닥다리를 타고 올라오네

봄이 되면

땅바닥은 누워 있는 사닥다리를 세우네

봄이 오면 땅이 세우는 사닥다리 참 신비하군요. 땅이 세운 이 사닥다리를 처음 발견한 이가 시인이라는 것 또한 신비해요. 좋은 인간, 좋은 세상을 위해 학교 공부가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 왔지만 시 공부만큼은 좀 필요하다는 생각 드는군요. 시란 다름 아닌 마음 수련의 장이니까요. 사막 같은 인간의 마음도 시를 만나면 오아시스도, 은하수도 될 수 있지 않겠는지요. 35년쯤 전 대학로 샘터 앞 지날 때 “곽재구 시인 아니세요?” 물어 온 이가 있었습니다. 이 사다리를 발견한 이이지요. 봄이 35차례쯤 지나는 동안 단 한 차례 다시 만나지 못했으니 이 세월 또한 신비하군요.     

곽재구 시인
2022-02-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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